[르포]"햇빛이 복이에요"…반지하에 흘러든 '행복의 로또'

기사등록 2017/03/26 10:37:31

최종수정 2017/03/26 14:49:46

【서울=뉴시스】자연채광장치 설치 전 반지하방.    (사진 = 강동구 제공)   photo@newsis.cok
【서울=뉴시스】자연채광장치 설치 전 반지하방.  (사진 = 강동구 제공)  [email protected]
강동구, 반지하가구 일조권 확보 위해 '햇살 가득한 방만들기' 올 첫 시행 
 반사경으로 모은 빛 지하로 전달...민간업체 2백원 상당 무상채광장치 지원
 첫 수혜자 심모 할머니 "일조권 확보로 우울감 날리고 퀴퀴한 냄새도 사라져"
 올해안 다자녀·장애인 등 9가구에 자연채광장치 지원...他 자치구 벤치마킹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비타민D는 단순히 햇빛만 쬐면 몸 안에서 만들어진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제 때 햇빛을 쬐지 않으면 몸이 아프다.

 비타민D는 칼슘과 인의 흡수에 관여하기 때문에 뼈와 근육이 먼저 아프다. '행복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세로토닌의 합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햇빛이 고독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피부노화는 말할 것도 없다.

 보통의 주거형태에서는 창문 앞에만 가면 마음껏 '햇빛 샤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반지하 주거자들에게는 쉽게 누릴 수 없는 호사다. 대부분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23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한 다세대 주택 반 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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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자연채광장치 설치 후 반지하방.  (사진 = 강동구 제공)  [email protected]
 독거노인인 심모(68) 할머니의 방은 여느 반지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 2개와 부엌을 겸한 거실, 그리고 화장실이 고작인 10평 남짓한 이 공간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저소득층에 제공하는 임대주택이다. 

 어둑한 실내에 퀴퀴한 냄새는 반지하방을 상징한다. 하지만 심 할머니의 방은 달랐다. 안방 싱글침대에는 밝은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불을 만져보니 보송보송했다. 어찌된 일일까. 창밖으로는 답답한 담벼락이 보일 뿐, 해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다.

 햇살의 근원은 담 위쪽에 자리한 반사경이었다. 계란판 4개를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반사경을 통해 빛은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오고 있었다.

 강동구는 올해 들어 반지하 거주 저소득가구 거주자의 일조권을 위해 '햇살 가득한 방 만들기'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처음이다. 민간업체로부터 200만원 상당의 자연채광장치를 무상으로 지원받아 진행하는 이 사업의 첫 수혜자가 심 할머니였다.  

 자연채광장치의 원리는 간단하다. 건물 옥상에 설치된 거울이 태양을 따라 자동으로 움직여 햇빛을 모아 아래 반사경을 통해 반지하방에 빛을 보내는 식이다.

 이 장치가 설치된 지 일주 일만에 할머니의 삶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단다.

 할머니는 6년 전 이 반지하방으로 오기까지의 삶을 먼저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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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울 강동구 둔촌2동이 심모(67) 할머니의 집 옥상에 설치된 자연채광장치.  (사진 = 강동구 제공)  [email protected]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다. 18살 꿈 많은 소녀였다. 당시 사진을 보면 '춘향이의 고장'답게 미인 소리를 들었을 법했다.

 음식 하나는 끝내주게 잘했단다. 식당일을 하면서 돈도 좀 벌었다.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낳았지만 얼마 못가 남편과 헤어졌다. 가족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을 꺼렸다. 다만 안방 벽에 걸린 액자에 채워진 손주들의 사진에서 이 노인이 가족에 품고 있는 애틋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식당일을 하다 10년 전 허리 병이 나 일을 그만뒀다. 일은 안 하고 치료비에는 계속 나가니, 있던 집도 팔고 결국 반지하방까지 내려오게 됐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하루 대부분을 안방에서 지냈다. 일주일에 2번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게 바깥 나들이였다.

 돈이 아까워 불을 때지 않아 방안은 늘 싸늘했다. 습기가 올라와 벽지는 오줌 지린 것 마냥 얼룩이 졌고, 옷장 속옷에는 곰팡이가 수시로 피었다.

 할머니는 "이전에는 가만히 누워있으면 머리만 복잡해지고 우울해졌어. 곰팡이 냄새도 싫고, 밖에 갔다 오면 집안이 캄캄해서 들어가기가 그렇더라"고 말했다.

 한의원에서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아도 허리 병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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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서울 강동구 둔촌2동이 민관협력을 통해 반지하 거주 저소득가구에 설치한 자연채광장치.  [email protected]  
 할머니의 낙은 화초 기르기다. 앉은뱅이 화장대 주변으로 놓인 화분 10여개가 자식과 다름없다. 햇빛이 제대로 안 들어오니 화초들은 시름시름 앓았다. 하늘 아래 자주 갖다놔야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지라 여의치 않았다.

 할머니는 집안에 햇빛이 들어오자 "화초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대로변이어서 옷을 밖에서 말리기도 어려웠다. 이제는 "방 안에서 빨래를 말릴 수 있다"고 기뻐했다.    

 할머니가 가장 반가운 것은 기분전환.

 할머니는 "전에는 방이 어두워서 밖에서 들어오면 전기스위치부터 먼저 켜야 했는데 이제는 그걸 안 해도 돼 기분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심 할머니는 "햇빛이 행복이다. 로또 맞은 것 같다. 이대로 죽기에는 아쉬운 나이 아닌가. 욕심을 내면 빨리 허리 병이 나아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돈을 벌어 2~3층으로 이사가고 싶다"고 밝게 말했다.

 강동구는 심 할머니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다자녀, 장애인 등 9가구에 자연채광장치를 지원할 예정이다. 이에 자극받은 다른 자치구도 이 사업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동구 관계자는 "홀몸어르신께서 방안에 햇살이 가득한 모습을 너무 행복하게 바라보셨다"며 "이번 사업으로 반지하에 거주하는 이웃들도 동등하게 햇빛을 누릴 권리를 갖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앞으로도 햇살 사각지대를 발굴·해소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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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햇빛이 복이에요"…반지하에 흘러든 '행복의 로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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