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애틋함, 뮤지컬과 절묘한 만남

기사등록 2017/04/23 13:33:43

【서울=뉴시스】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7.04.23. (사진 = 쇼노트·프레인 글로벌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7.04.23. (사진 = 쇼노트·프레인 글로벌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이야기와 감성으로 대극장을 가득 채운 뮤지컬을 오랜만에 만났다. 이달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개막한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다.

 최근 국내 대극장을 채운 뮤지컬은 쇼적이거나 웅장한 선율이 똬리를 튼 작품이 주를 이뤘다. 연극적인 요소가 짙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이런 흐름에서 자칫 심심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개별적인 사건의 나열인 플롯의 명확함과 이를 시의 적절하게 품는 감성적인 음악은 러닝타임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을 쏜살같이 느끼게 만든다.

 작품은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다. 미국 아이오와주의 한 마을에서 한적한 삶을 살고 있던 이탈리아 출신 주부 '프란체스카'와 촬영차 마을을 찾은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 두 사람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다.  

 뮤지컬은 급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이 운명론에 무대만이 할 수 없는 어법으로 개연성을 부여한다. 예컨대, 길을 잃은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의 집 앞에서 그녀를 만나는 순간 잠시 2초가량의 정적이 생긴다. 찰나의 이 순간은 무대 밑 객석에게는 상당한 긴 시간처럼 느껴지는데 관객이 그 운명에 빠져들게끔 하는 여지를 준다.

 극적 전개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또 다른 요소는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는 시선이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그녀의 고향 이탈리아 나폴리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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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7.04.23. (사진 = 쇼노트·프레인 글로벌 제공) [email protected]
 그가 사진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한데 두 사람은 그곳 장소들을 함께 떠올리며, 나아가 현재 일상까지 공유한다. 함께 수프를 만들어먹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대극장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중소형 뮤지컬 '심야식당' 등에서는 이미 음식을 만들었다) 무대 위에서 실제 음식을 만든다. 각종 야채를 자른 뒤 냄비에 버터와 함께 넣고 뭉근하게 끓여나갈 때의 맛있는 냄새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3층까지 서서히 퍼질 때 식욕을 넘어 새로운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다는 설렘까지 아우른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로버트의 성향.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여성 혐오가 이슈인 시대, 게다가 여혐 요소가 다분했던 대극장 뮤지컬에서 그는 극의 배경인 1965년은 물론 현재에도 상당히 페미니즘적인 인물이다.

 "설거지는 하늘이 여자가 하는 일로 정해놨다"는 발언이 현재 대선주자에게 나오는 한국 땅에서 로버트는 자연스럽게 요리를 돕고, 설거지는 본인이 하겠다며 먼저 팔을 걷어붙인다. 무심한 남편과 두 아이를 돌보느라 단지 살림을 '해치우는 것'이라 여기던 프란체스카가 일상을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그에게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대로 한번 이혼 경력이 있고 히피처럼 세상을 떠도는 로버트에게 삶을 공유할 수 있는 프란체스카는 새로운 안식처처럼 여겨질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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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7.04.23. (사진 = 쇼노트·프레인 글로벌 제공) [email protected]
 감정을 이처럼 켜켜이 쌓아가는 김태형 연출 덕분에 자칫 불륜을 미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뮤지컬은 현명하게 비켜나간다. 김 연출은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벙커 트릴로지', 뮤지컬 '로기수' 등 인물들의 감정선이 중요한 작품에서 명확함을 만들어왔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그의 내공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덕분에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원래의 자신의 삶을 택한 뒤 충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 아련함이 극을 지배하는 정서다.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정서를 확실하게 만들어낸 건 옥주현과 박은태, 두 배우의 공이 크다. 이미 가창력을 입증 받은 배우들인데 연기력 역시 그에 못지않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왕비, 스파이 등 뮤지컬에서 주로 강한 캐릭터를 맡아온 옥주현은 일상을 꿋꿋이 살아가지만 순간 빈틈을 보이는 주부의 세밀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았다. 매끈하고 맑은 음성의 박은태는 로버트에 기름기를 빼고 순수함을 얹었다.

 두 배우는 두 달 가량을 원캐스트로 나서는 만큼 감정의 결은 더욱 세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공동 제작사인 쇼노트와 프레인 글로벌은 두 배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통 2회 차를 공연하는 일요일에 1회차만 무대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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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2017.04.23. (사진 = 쇼노트·프레인 글로벌 제공) [email protected]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또 다른 장점은 팝 발라드에 가까운 음악이다. 대표 넘버 '원 세컨드 앤드 어 밀리언 마일스(One Second and a Million Miles)'는 과하지 않게 귓가에 담긴다.

 요즘 대극장 뮤지컬은 과도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감정을 억지로 부여하고 쥐어짜는데 양주인 음악감독이 이끄는 이 뮤지컬은 그 흐름에 비켜난 것만으로 캐릭터의 감정이 배어 있는 노랫말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피아노 위주만으로 두 캐릭터의 고조된 감정선을 오밀조밀하게 표현하는 점 역시 탁월했다. 보통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서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사용하는데,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그랜드피아노로 연주한다. 좀 더 선율이 선명해진 이유다.

 뮤지컬은 같은 소설을 바탕으로 삼은 메릴 스트립·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의 아우라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무대 어법으로 원작의 정서를 잘 품어냈다. 2014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무난하면서도 발 빠르게 한국 무대에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 오는 6월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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