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의 다양한 확장···국립현대무용단 '권령은과 정세영'

기사등록 2017/08/11 18: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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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무용단 '권령은과 정세영' 중 권령은 '글로리'. 2017.08.11. (사진 = 목진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 미사일, 핵폭탄, 스콜피온, 옆찢기…. 엠넷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 시즌 2·3으로 얼굴을 알린 안남근은 남자 무용수들이 선보일 수 있는 고난도 테크닉을 모두 실현한다. 남자 무용수들이 콩쿠르에서 우승하기 위한 일종의 필살기. 안남근은 "군 입대는 곧 무용 포기였다"며 3년 간 콩쿠르에 도전한 이야기를 전한다. 특히 그의 팔이 훈련병이 들고 있는 소총으로 대용되는 순간 섬뜩하다.(권령은 '글로리' 중)
 
#2. 무용 공연 카테고리로 묶였지만 무용수들의 고난도 테크닉은커녕 따라갈 만한 몸짓은 거의 없다. 대신 전기포트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줄에 매달린 노랑 풍선이 그 줄이 끊기자 천장 위로 올라간다. 사물들은 제 용도로 사용되지도 않는다. 팬이 돌아가고 있는 스탠드 선풍기는 엎어져 '딱딱딱' 소리를 낸다.(정세영 '데우스 엑스 마키나' 중)
 
11일 저녁 예술의전당 연습동 N스튜디오에서 진행된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성수)의 ' 권령은과 정세용' 런스루 리허설은 지금 여기의 현대무용이 과연 얼마나 확장되고 있는지를 확인한 순간이었다.
 
안무가 권령은(35)의 '글로리'는 군 면제를 받기 위해 무용 콩쿠르에 도전해온 남자 무용수 안남근의 실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국 제도 속에서 몸을 다루는 방식을 추적하는 일종의 안무적 다큐멘터리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무용단 '권령은과 정세영' 중 권령은 '글로리'. 2017.08.11. (사진 = 목진우 제공) photo@newsis.com
안남근의 개인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 무용수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콩쿠르 도전 과정에서 어떻게 몸이 콩쿠르라는 규격에 맞게 편집되고 다듬어졌는지, 군 면제 제도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그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이 작품은 콩쿠르와 군 면제 제도의 옮고 그름을 말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는 콩쿠르에서 우승한 무용수들의 필살기 역사가 나열되는데, 이는 한국 남자 무용수들이 거쳐 갔던 그리고 여전히 겪고 있는 현실과 제도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부각된다.

'글로리'의 드라마투르그를 맡은 김재리는 "제도와 또 다른 제도의 경계에서 신체의 몸짓은 항상 잠재성을 담지하고 있다"면서 "그래서 이 작품의 질문은 결국 '춤'으로 향하며 춤을 보는 다른 시작을 제안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품 속에서 안남근이 무용 콩쿠르를 위한 격렬한 몸짓을 선보이는 동안 한편에서는 거식증에 시달리는 무용수가 나온다. 그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맥주 5000cc를 먹어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안주는 계속 토해내야 하는 상황. 무용계 내에 명백히 존재하지만 암암리에 숨어 있었던 몸의 속박이 무대 위로 올라올 때, 날것의 느낌은 더 강력하다.

이와 함께 작품 속에서는 군복을 형상화한 듯한 수박이 내내 안남근 주변을 따라 다니는데, 마지막에 이 수박을 화끈하게 쪼개, 화채를 만드는 순간은 묘한 쾌감과 위트를 안긴다. 또 무용에 연극적인 요소를 섞은 피나 바우쉬의 한 텍스트를 빌려 쉬운 안무로 마무리하는 마지막 역시 인상적이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무용단 '권령은과 정세영' 중 권령은 '글로리'. 2017.08.11. (사진 = 목진우 제공) photo@newsis.com
이날 리허설 뒤 만난 권령은은 "춤이 규칙이 아닌 약속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앞서 권령은은 2015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안무랩(LAB) 프로그램에 참여, 다이어트와 거식증 등 자신의 실제 경험을 소재로 한 '몸멈뭄맘'을 통해 '한국현대무용 역사에서 바라본 몸의 관점'을 주제로 한 리서치 결과물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작품이 '글로리'의 출발점이다. 이번 무대에서는 지난해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창의력을 뽐내는 프랑스의 신개념 무용 경연대회 '댄스 엘라지' 파리 경연에서 3위를 차지한 10분 버전을 30분으로 확장시켰다.

안남근과 함께 작품의 사운드 디자인을 담당한 지미 세르가 출연을 겸하고 연극배우 김도완과 현대무용수 김선주가 출연한다.

정세영(37)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전통적 극장의 의미와 오늘날의 극장 공간이 갖는 의미의 차이 또는 다른 쓰임을 고민한 작품이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무용단 '권령은과 정세영' 중 정세영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2017.08.11. (사진 = 목진우 제공) photo@newsis.com
작년 댄스 엘라지 서울 경연 1등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각인시킨 정세영은 대학에서 연극과 무대미술을 공부했다. 프랑스 몽필리에 국립안무센터에서는 안무를 공부했다. 장르를 전방위로 섭렵한 덕분에 그의 작품은 연극 또는 무용, 나아가 미술 퍼포먼스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기계장치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으로 그리스 비극에서 신적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극적 갈등을 갑작스럽게 해결하는 고전적, 통속적 연출 기법을 가리킨다.

정세영은 작년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댄스 엘라지' 당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물리적으로 구현했다. 마지막에 배우 한 명이 배우들 머리 위까지 올라온 바(Bar)를 잡고 공중으로 올라갈 때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이날 리허설이 끝난 뒤 만난 정세영은 "해당 장면이 스포일러가 돼 어느 부분에 배치를 할지를 두고 고민 중"이라고 웃었다. 이날 리허설에는 이 장면이 맨 앞에 등장했는데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정세영은 2013년도부터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제목 아래 부제를 달리하며 미술관, 창고 등에서 극장의 환영성과 판타지를 퍼포먼스와 설치 등을 통해 탐구해왔다. 이번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의 작업은 정식 극장에서 선보이는 첫 무대다.

내적 동기에 따라 움직이는 무용수가 아닌, 전자제품이 기계적으로 작동하고, 서사적 갈등이나 관계가 부재한 대신 서사적 음악이나 조명 같은 장치가 압도되는 무대라는 김정현 미술평론가의 평처럼 이런 작업이 첫 정식 극장에서는 어떻게 표현될 지 관심을 끈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국립현대무용단 '권령은과 정세영' 중 정세영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2017.08.11. (사진 = 목진우 제공) photo@newsis.com

정세영의 작업 특징은 무용수가 아닌, 사물을 통해 운동감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사물이 주된 출연진인데, 첫 번째 신이 점프로 시작해서 마지막 신이 랜드(착륙)로 끝나는 서사적 틀도 갖췄다. 작품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물건들은 각자 특정한 위치에 놓여 있다.

정세영은 "사물 위치의 변화만으로도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크다"면서 "이야기의 기승전결은 움직임의 위, 아래가 모인 것이고 그렇다면 위, 아래의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했다"고 말했다.
  
곽아람 국립현대무용단 기획팀장은 "무용계에서 신진인 두 사람은 끊임없는 고민과 아이디어로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했다. 이 두 작품은 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의 두 번째 시리즈다.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