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은상 "배가, 고팠다"···'유다복음' 출간

기사등록 2017/08/23 14:34:36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재로는 바보였다. 목련반이었다. 육중한 몸을 기우뚱거리며 걸어갈 때면 우리를 잃고 헤매는 암퇘지 같았다. 돼지새끼, 재로는 흰자 위에 핏대를 세우고 별명을 부른 급우를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목련반 재로'·16쪽)

200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김은상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유다복음'이 출간됐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시인 김은상은 이 시집에는 세 개의 신과 조우하고 또한 시적으로 투쟁하며 반목하고 있다.

그가 만난 첫 번째 신은 가난이다. 가난이라는 신을 향해 시인 김은상은 묵직한 펀치를 날린다.

그 다음으로 만난 신은 자본주의이다. 시인 김은상은 서울의 전세자금대출과 신용등급, 서울의 카드론과 눈치를 생각하며 홀로 공산당선언을 독백하는 예수의 모습('서울 예수')을 그린다.

그는 지금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무소불위의 포악한 자본주의라는 십자가를, 자신 스스로 짊어지기를 꿈꾼다. 그래서 그의 시적 투쟁이 닿는 마지막 신은 예수다.

'유다복음'을 통해 제 스스로 물신화된 기독교의 교리를 정면으로 깨트리고 있다. 예수가 아닌 유다의 관점에서 재구성된 신약과, 인간이 아닌 신의 윤리로 재단되어 있는 구약의 세계를 재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김은상의 '유다복음'은 단순한 반기독교적 관점이 아니라 현실과의 실제적 고투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시인 김은상에게는 지상에 남은 마지막 '야훼의 자세', 바로 최후의 양심수인 시인의 자세다.

"방언이 자동기술법이냐고요, 글쎄요, 그렇다고 볼 수 있겠죠, 화창하게 봄볕을 흔드는 벚꽃의 계절처럼 마일드하죠, 전도사와 간통한 꿈이나 십일조에 품은 불만도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회개할 수 있냐고요, 물론 당신이 그런 건 아니겠죠, 방언의 내용은 주님만이 알 수 있어요, 당신이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까지 모두 자백하게 하죠."('방언하는 사람들' 중·35쪽)

김 시인은 "달방에 머물렀던 한 소년이 있었다"며 "밤마다 늙은 매춘부들이 홍등 아래서 화대를 흥정하던 곳. 소년은 그 기이한 풍경 아래서 시를 썼고 그녀들은 몸을 팔았다. 어느 날 밤, 자정이 지나고, 매춘부의 다정한 목소리가 소년을 불러냈다.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다는 말은 사람이 외롭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소년의 마음이 갓 피어난 꽃처럼 흔들거렸다. 그러나 소년의 외로움이 도착한 곳은 좁고 낮은 방 한가운데에 놓인 밥상이었다. 황홀한 침실의 바깥으로, 포주인 할머니가 앉아 있었고, 오래 묵은 반찬들은 어두웠다. 소년이 밥상 앞에 앉자 할머니는 숟가락으로 자신의 밥그릇에서 밥을 푹 퍼서 소년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184쪽, 한국문연,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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