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다섯번이나 "죄송하다"…정작 피해자 사과는 외면

기사등록 2018/03/09 21:16:59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출석하고 있다. 2018.03.09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출석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국민, 도민, 가족에 거듭 사죄…피해여성은 거론 안 해
피해자 주장 맞냐는 질문에도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
현 단계 사과할 경우 혐의 시인으로 해석될 가능성 높아
향후 수사·재판서 불리한 국면 안 만들려는 의도인 듯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성추문에 휘말린 지 나흘 만인 9일 국민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 머리를 숙였지만 피해자가 기다렸을 진정성 있는 사과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검찰 수사와 재판을 의식한 계산된 행동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오후 5시4분께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 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검찰청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내 뱉은 말은 '사과'였지만 사과를 받는 대상에 피해자는 없었다.

 안 전 지사는 먼저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용서를 구했다.

 차기 대권주자로 꼽힐 만큼 자신에게 기대를 건 주변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준 데 따른 미안함을 의식한 듯 "저로 인해 상처를 입었을 국민, 도민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라고 거듭 밝혔다.

 또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착잡한 심경을 나타냈다.

 이어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라고 대국민 사과를 되풀이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이 주셨던 사랑과 격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거듭 국민을 '의식'했다.

 본인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통받은 옛 수행비서이자 피해자인 김지은씨에게는 사과는커녕 단 한마디 거론도 하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포토라인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던 안 전 지사는 3분20초 동안의 입장 표명에서 '죄송하다'는 표현을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잘못', '미안'이란 표현도 각각 한 번씩 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출석하고 있다. 2018.03.09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출석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결국 안 전 지사는 국민, 도민, 가족에게만 사과하고, 피해자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안 전 지사가 향후 재판을 염두에 두고 말 한마디, 처신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려는 판단에 따른 계산된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만약 김씨에게 섣불리 사과나 용서를 구할 경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마치 혐의 시인이나 범죄를 저질러 잘못을 인정하는 취지로 해석돼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상대방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소지가 있다.

 결국 안 전 지사가 피해 여성에게 사과 한 마디 안 한 건 본인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향후 법리적 대응으로 법정에서 치열하게 유무죄를 다투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런 전략적 판단을 엿볼 수 있는 다른 대목도 있었다.

 안 전 지사는 검찰 조사를 받기 전 '김지은씨 말이 모두 맞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대신 "앞으로 조사과정에서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적극적인 소명 의지를 내비쳤다.

 미투 피해여성에 대한 법률지원을 맡고 있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검찰에 자진출두한 안 전 지사에 대해 "매우 강력히 유감"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어떤 사과의 행동과 태도도 아니다"라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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