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 실현 가능성에 대한 미 조야의 회의론이 더욱 거세지는 가운데 북미 당국이 '센토사 합의'에 대한 신뢰를 표하며 대화 국면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여전히 표명하고 있는 만큼 후속 회담을 통해 등가교환 카드를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된다.
북한은 지난 7일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을 떠난 직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 측의 태도와 입장은 실로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것이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거침없이 표출했다.
담화에 따르면 김 통전부장을 단장으로 한 북측 대표단은 ▲다방면적 교류 ▲정전협정일 종전선언 발표 ▲대출력발동기(엔진) 시험장 폐기 ▲유해 송환 실무협상 개시 등을 주요 의제로 준비했으나, 미국 측은 ▲신고·검증 문제에만 집중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서해 동창리의 대출력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는 것으로 '신뢰 선순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봤으나, 미국의 입장은 달랐던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미국 내 회의론은 북미 정상회담 이후 더욱 커졌다. 제네바합의와 6자회담 9·19공동성명 등 실패의 경험에 기반한 불신을 해소하기에 비핵화 '약속' 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게 회의론자들의 주장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고립 상황을 탈피하기 위한 결과물이 필요했고,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최소한 '신고 범위' 정도라도 우선적으로 합의하려 했을 거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백전백패한 케케묵은 낡은 방식'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북미 양국은 여전히 비핵화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담화에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후속 회담 개최 의지를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김 위원장이 "우리가 서명한 계약과 우리의 악수를 존중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신뢰를 보내고 있다.
문제는 북미가 비핵화 로드맵 초기 이행에 있어서 입장 차이를 얼마나 빨리 줄이느냐다. 구체적인 이행 카드에서 양측의 입장차는 분명하다.
북한은 '선의'에 기반한 선제적 조치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용 엔진을 개발할 수 있는 시험장을 폐기하겠다고 했으니 종전선언을 하고 체제보장 논의 단계로 넘어가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신고 대상에 대한 논의까지 시작돼야 다음 단계로의 진전을 검토할 수 있을 거라는 관측이다.
그렇지만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다. 북미 양측은 이견을 확인했음에도 워킹그룹을 통해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 측이 요구하는 '동시행동 원칙'에도 공감대를 표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 통전부장이 언제 다시 만날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오는 9월의 유엔총회 등 다자무대를 계기로 북미 양측이 고위급 또는 정상급 만남을 추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북한이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ICBM 해체 등의 조치를 약속하고, 이에 미국이 종전선언 논의를 구체화한다면 실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 논의를 맞물려 하자는 건데, 폼페이오 장관이 이번에 비핵화 문제만 꺼내 들자 불만이 컸을 것"이라며 "그렇지만 판을 깨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조 수석연구위원은 이어 "북한은 후속 고위급회담에서 미국이 신고 문제를 다시 제시할 경우 이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 보장 조치를 '등가교환' 카드로 요구할 것"이라며 "현재는 북미가 서로의 '일방적 요구조건'을 추상적으로 확인한 정도로 상태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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