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證 전산사고' 해외주식 거래시스템 부실 도마...예탁원 직무유기 논란

기사등록 2018/08/10 14:50:01

"예탁원 주식 보관 중 발생하는 권리 행사 처리 의무 나몰라라"

"국내 주식처럼 권리 변화 자동으로 반영되는 시스템 구축 시급"

예탁원 "해외예탁원이 알려주지 않아 주식 권리변화 날짜 인지 못 해"

【서울=뉴시스】이진영 하종민 기자 = 증권사들이 개인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해외주식 거래 판촉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유진투자증권의 해외주식 거래시스템에서 전산 사고가 발생했다. 해외주식의 병합 결과가 제때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반영되지 않으면서 비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졌고, 해당 투자자와 유진투자증권은 사태 수습 비용을 두고 금융감독원의 분쟁 조정 절차까지 들어갔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증권사의 단순 전산 실수라고 보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들의 해외주식을 독점적으로 보관하는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은 예탁결제원이 해외 주식에서 발생한 분할, 합병, 상장폐지 등 권리 변화를 증권사에 신속하게 전달 및 반영하는 시스템 구축을 도외시 하면서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 A 씨는 지난 5월 25일 유진투자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통해 자신의 계좌에 있던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중 하나인 '프로셰어즈울트라숏 다우 30' 종목 665주를 전량 매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당시 A씨가 보유한 주식은 166주뿐이었다. A 씨가 매도하기 전날 해당 ETF가 4대 1의 비율로 주식 병합을 단행했지만 유진투자증권이 주식 병합 결과를 뒤늦게 시스템에 반영하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유진투자증권의 실수로 A씨는 초과 수익 1700만원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유진투자증권은 매도 제한 조치를 취하고 초과 매도된 499주를 사들였다. 이후 개인투자자 A씨에게 499주를 매수하는 데 들어간 약 1800만원의 비용을 요구했다. 이에 A 씨는 자신의 계좌에 있던 주식을 판 정상적인 거래로, 증권사에 배상해야 할 의무는 없다며 거절했다. 결국 유진투자증권은 법적 소송을 예고하기에 이르렀고, A 씨는 금감원에 지난달 19일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이에 맞서 유진투자증권도 이달 8일 공식 입장을 금감원에 제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유진투자증권은 과거 판례 등을 들어 499주를 매수에 사용된 1800여만원을 A씨가 물어줘야 한다는 입장이고, A씨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며 "사실 확인을 위해 이날부터 5영업일간 유진투자증권에 현장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동시에 예탁원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는지 현장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삼성증권 유령주식 배당 사고에 이어 유진투자증권에서 해외주식 거래 전산사고가 발생하며 증권사 매매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사태에 예탁원의 책임을 배제할 수 없고, 이참에 예탁원이 시스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예탁원은 법적으로 개인들이 거래하는 해외주식을 독점 보관하는 지위를 보유했다. 실제 예탁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예탁제도란 '증권을 한데 모아 안전하게 보관하고 이를 관리하는 장부인 계좌부를 통해 매매거래에 따른 결제, 보관 중 발생하는 권리 행사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에서는 해외 주식의 권리에 변화가 발생하면 개인들의 해외주식 거래를 중개하는 증권사에 신속히 알려주고 시스템적으로 뒷받침해 개인 투자자들이 온라인상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예탁원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가 50대 1로 주식 분할 후 거래를 개시했을 때 증권사들의 중간 조작 없이 개인 투자자들이 온라인상에서 거래할 수 있듯이 해외주식도 예탁원이 관련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며 "이 때문에 증권사들이 해외주식에 보관에 대한 수수료를 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개인들이 해외주식을 매매한 지 10년이 넘는데 예탁원이 이런 의무를 나몰라라하니 유진투자증권 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라며 "앞으로 해외주식 거래가 더 늘텐데 일부 대형사는 자체적으로 돈을 들여 정비했지만 대부분의 증권사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 집단소송 사태까지 초래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지적했다.

(출처=예탁결제원 홈페이지)
(출처=예탁결제원 홈페이지)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다수 증권사들은 따로 인력을 배치해 블룸버그 등 정보업체에 의존해 수기로 해외주식의 권리 변화를 시스템에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블룸버그 같은 곳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법적인 책임이 없는 곳임에 따라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며 "예탁원에 개인 해외주식 보관 독점 권한만 법적으로 부여되지 않았다면 증권사들은 예탁원이 아닌 권리 변화를 알아서 반영해주는 해외 은행에 수탁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상당수 증권사는 궁여지책으로 주식 권리 변화를 내역을 수기로 반영하는 것은 물론 불안감에 주식 권리 변화가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거래 정지를 설정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예탁원이 제대로 해외주식 권리 변화 정보를 통지 및 시스템적으로 반영해준다면 권리 변화에 따른 거래정지 기간을 최대한 줄여 투자자들에게 주식 권리 변화에 따른 투자 기회를 누릴 수 있게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밖에 개인들의 해외주식은 반드시 예탁원에 수탁해야 하지만 기관들은 이런 규제에서 벗어나 해외 수탁은행에 해외 주식을 보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탁원의 직무 소홀로 인한 해외주식 투자 불편 피해를 개인들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예탁원은 "해외 자본시장에서는 예탁원도 다른 증권사와 똑같은 한 명의 시장 참가자에 불과하다"며 "미국 중앙예탁기관(DTCC) 등 해외 예탁원이 주식 병합 여부만 통보할 뿐 정확한 날짜는 알려주지 않아 예탁원도 역시 병합 날짜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예탁원의 해명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 예탁원이 주식 권리 변화에 대한 공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보관 비용을 지불하며 해외 주식을 수탁한 즉, 하청을 준 은행으로부터 주식의 권리 변화에 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달라고 요구를 해야 하는 데 예탁원이 손을 놓고 있는 것"이라며 "예탁원에 개인 해외주식 보관에 대해 독점적 보관 의무를 법으로 보장한 것은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인데 양질이 아닌 저질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증권업계의 요구는 알고 있지만 해외 증권시장에서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유진투자증권과 관련해 해외주식 거래에 문제점이 발견된 만큼 향후 개선방안이 나오면 그에 맞춰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

기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