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옥탑방 박원순' 이웃집 독거노인 옥상에 쿨루프 직접 시공

기사등록 2018/08/16 13:54:53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은 16일 강북구 삼양동 한 독거노인 가구를 찾아 옥상에 차열도료(쿨루프)를 직접 발랐다. 1개월째 이어진 삼양동 옥탑방 생활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현장행정의 주민 밀착도를 더 높이자는 취지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9시30분께 강북구 솔샘로 211번지를 찾았다. 이 구역은 옥탑방이 딸린 노후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이다. 한달째 인근 옥탑방에서 살고 있는 박 시장은 "이제 이쪽 지리는 내가 훨씬 잘 안다"고 말하며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차열도료 시공이 이뤄질 주택은 3층짜리 노후주택으로 옥상에 옥탑방이 딸린 행태다. 이 주택 옥상에 차열도료를 칠하는 게 박 시장의 임무다.

 30도를 웃도는 폭염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은 이날 아침, 박 시장은 밀짚모자를 쓰고 옥상에 올랐다. 작업에 앞서 운동화 위에 덧신도 신었다.

【서울=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 주택 옥상에서 쿨루프 시공을 하고 있다. 쿨루프는 도심열섬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물 옥상 등에 햇빛과 열의 반사 효과가 있는 밝은색 도료 등을 시공해 열기가 지붕에 축적되는 것을 줄이는 공법이다. 옥상 바닥의 온도는 약 10℃ 낮아지고, 건물 실내온도는 2~3℃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2018.08.16. (사진=서울시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원순 서울시장이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 주택 옥상에서 쿨루프 시공을 하고 있다. 쿨루프는 도심열섬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물 옥상 등에 햇빛과 열의 반사 효과가 있는 밝은색 도료 등을 시공해 열기가 지붕에 축적되는 것을 줄이는 공법이다. 옥상 바닥의 온도는 약 10℃ 낮아지고, 건물 실내온도는 2~3℃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2018.08.16. (사진=서울시 제공) [email protected]
박 시장은 이날 시공을 위해 페인트와 기구 등을 기부한 삼화페인트공업 관계자를 비롯해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 대학생서포터즈 '온비추미' 5명과 인사를 나누고 작업에 착수했다.

 박 시장은 차열도료를 만드는 일부터 직접 했다. 흰색 차열도료에 경화제를 부은 뒤 긴 막대로 저어서 배합하는 일까지 도맡았다. 독한 페인트 냄새가 확 끼쳤지만 박 시장은 내색하지 않았다.

 박 시장은 "내가 여기 와서 도배도 빠른 시간에 익혔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자 삼화페인트공업의 성북구 대리점 김태학 점장은 "위만 대충 저으면 제대로 안 섞인다. 힘을 줘서 저어야 한다"며 핀잔을 줘 주위를 웃겼다.

 10분에 걸친 배합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칠하기 작업이 시작됐다.

 박 시장과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붓을 집어들고 흰색 차열도료를 칠했다. 초벌로 해놓은 녹색 도료 위에 차열기능이 있는 흰색 도료를 덧칠하는 방식이었다. 롤러(굴밀이)가 닫지 않는 구석부터 조심스레 칠하기 시작했다.

옥상 구석에서 붓질을 하던 박 시장은 "점점 속도가 더 난다"며 재차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김 점장은 "이렇게 일하면 쫓겨난다. 네일아트처럼, 여자 얼굴에 화장할 때처럼 예쁘게 칠하라"고 훈수를 뒀다.

 박 시장의 작업을 지켜보던 김 점장은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렇게 흰색 페인트를 바르면 실내 온도가 2~3도 정도 내려간다"며 "비전문가도 조금만 배우면 쉽게 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점장에 따르면 차열도료 시공에는 1평당 2만원 정도가 들어간다. 칠하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단가는 싸진다.

 박 시장과 함께 작업한 20대 초반 학생들은 밀짚모자에 흰 수건을 목에 걸치고 땀을 닦아내며 붓질에 열중했다. 이들은 차열도료가 서울시 전역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를 위해 서울에너지복지시민기금에 기부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아연씨는 "여름철 어려움을 겪으시는 이 지역 할머니들이 시원한 여름을 보내셨으면 한다"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예영씨는 "앞으로 기부와 지원이 많이 이뤄져서 앞으로 쿨루프가 필요한 다른 분들을 위한 시공작업에 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칠하기 작업이 절반정도 끝나자 박 시장은 온도측정기를 가져와 직접 온도를 쟀다. 초벌만 된 곳은 32도 안팎이었지만 흰색을 칠한 곳은 23도까지 온도가 떨어졌다.수치를 확인한 박 시장은 "엄청 차이가 나네. 효과를 직접 보니 훨씬 확산시켜야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옥상 규격이 가로 7.6m, 2.5m로 크지 않은 탓에 이날 작업은 금방 마무리됐다. 박 시장은 작업을 지켜보던 세입자 이혜신씨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 냉방용품을 전달했다. 냉방기능이 있는 깔개와 생수병이 전달됐다.

 올해 77세인 이씨는 "이번 여름은 정말 말도 못하게 더웠다. 서울시 큰살림을 하느라 신경 쓸 일도 많을텐데 이렇게 노인들까지 돌봐주시다니. 전(임 시장들)보다 너무 일을 잘 한다"며 박 시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씨는 옥상 차열도료에 관해선 "나같이 어렵고 덥게 하는 노인들은 이걸 칠하면 좋겠다"면서도 "사실 나라 재정이 어려운데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해서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작업을 마친 박 시장은 뉴시스와 만나 "정책이란 현장에 터 잡아야 한다"며 "도시에 큰 변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민이 살아가는 공간이 바뀌는 것은 더 중요하다. 집을 수리하고 전기 배선을 개선하고 쿨루프를 만드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이런 것들을 다 시가 할 수는 없으니 마을사람들이 하게 하면 사회적 경제가 충실해지고 임팩트도 커진다"며 "이런 게 주민의 소득사업이 되고 일자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18일 마감할 삼양동 옥탑방 생활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오늘뿐만 아니라 지난 한달 이곳에서 살아보면서 주민이 어떻게 먹고 살지 정말 걱정이 많이 됐다. 수입이 생길 곳이 없지 않냐"며 "세상은 결국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의 바닥에 해법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집 수리 같은 일에서부터 주민이 소득을 얻는 사업들이 시작되고 사회 개선과 개혁의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그러면서 '마을이 곧 우주'라는 간디의 말과 '싱크 글로벌리, 액트 로컬리(생각은 세계적으로, 행동은 지역적으로)'라는 말을 언급했다. 그는 "99대1의 사회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은 결국 지역, 풀뿌리, 그리고 마을"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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