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면추상' 유희영 화백 "쉬워 보인다고요? 투쟁의 결과물"

기사등록 2018/10/11 19:23:46

현대화랑서 15년만에 개인전...11~11월 4일까지

정확한 구도로 공간 분할한 회화 20여점 전시

【서울=뉴시스】 유희영 화백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뉴시스】 유희영 화백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5년만에 개인전을 연다.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 = "색면추상이라는 극단적인 쟁취를 위해 투쟁을 해왔다."

 유희영 화백(78)이 15년만에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2003년 갤러리현대서 개인전 이후 강산이 한번 바뀐 세월에 다시 노익장을 과시한다. 2007년부터 2012년도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역임한후 오랜만에 미술계에 드러낸 그는 날씬한 몸매의 건강한 모습이었다.

 "2003년 갤러리현대서 개인전, 2006년 뉴욕 첼시에서 전시후 오랜만이죠. 이번 전시는 2000년대 이후 색면추상 작업을 중점적으로 선보입니다."
 
 '색면추상'은 그야말로 보기 쉽다. 한가지 색으로 그린, 어찌보면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결을 달리한다. "극단적"이라는 유화백의 말처럼, 작품은 '극단 오브 극단'이다. 단순하고 강렬한 색면 회화를 추구하는 그림 같지 않은 그림이다.

 한가지 색으로 캔버스를 덮고, 색면으로 공간을 분할한게 전부다. '참 쉽게 그렸네' 라는 생각이 들지만, 단순해서 더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작품은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게 유 화백의 입장이다. "단순한 그림은 기법이 아니라 재료의 문제가 있다."

 유화로 제작하기 때문에 인내심이 필요하다. 아크릴 물감을 한방울도 안쓰는 탓이기도 하다. 물감 마르기는 평균 3~5일, 색을 칠하고 또 칠하기를 5~6번 한다.

 "나이를 먹으니 이젠 큰 작품 하기도 쉽지 않더라." 오랜만에 전시장에 등장한 유 화백은 "개인전만 안했지, 그동안 예술원 회원전등 다양한 그룹전에 작품을 출품했다"면서 "늘 붓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유희영, 2017 M-6__2017__120x120.
【서울=뉴시스】 유희영, 2017 M-6__2017__120x120.


 '색면추상' 작업은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1962년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유화백도 형상이 보이는 그림 구상작품을 했었다. 그러다 반구상으로, 서정적 추상에서, 색면추상으로 단계를 거쳐왔다. 비정형 추상의 외길로, 몇 개의 수직 띠로 화면을 분할하고 그 안에 하나 또는 두 개의 색을 도포하는 색면추상화를 추구했다.

 유화백은 "추상은 심상의 세계를 자신만의 표현방법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앵포르멜(Informel)의 영향을 받아 80년대부터 시작한 작가의 서정적 추상작업은 피카소의 청색시대(Blue Period)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코발트 블루(Cobalt Blue), 프러시안 블루(Prussian Blue) 등 다양한 청색으로 이루어졌고 그 이후 80년대 후반부터 작가는 스스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붉은 계열의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91년부터 충청북도 옥천의 새로운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 자연 속 생활에서의 사색의 경험들을 색면추상으로 녹여내고자 했다.

 "구성적인 아름다움을 초월한 내면의 본질을 관철하고 있다"는 작품은 조형적인 특징을 극대화하며 물성 그 자체를 시각화하는 것을 넘어 작품 그 자체로 독특한 아우라를 발산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벌써 40년째, 국내 색면추상 대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지겨우면 자기 스스로 알아서 바꾸게 되어 있다"며 "아직은 할만하다"고 했다.

 칼날처럼 베일듯 반듯하고 날카롭게 면과 면을 분할한 작품은 냉정하다. 모든 것은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고 정확한 구도로 틀이 잡혀 있다. 
【서울=뉴시스】 11일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유희영 화백 개인전이 열렸다. 2000년대 이후 제작한 신작 색면추상 20여점을 11월 4일까지 전시한다.
【서울=뉴시스】 11일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유희영 화백 개인전이 열렸다. 2000년대 이후 제작한 신작 색면추상 20여점을 11월 4일까지 전시한다.


  큼직한 평 붓으로 바탕칠을 한 공간위에 조화를 이룬 동색조때문일까.

  핑크, 바이올렛, 그린, 블루 계통으로 칠한 작품은 화려해보이는데 튀지않고 잔잔한 분위기를 전한다. 

 서성록 미술평론가는 "여러 색을 칠했지만 그것은 우리를 유혹하는 색이 아니라 내면과 조우하게 만드는 가교역할을 한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절제된 형태와 구성미도 일품이지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밋밋한 평면과 하나가 된 색채가 발산하는 어떤 아우라이다. 그림을 볼수록 자석처럼 우리의 시선을 잡아당기고 고요하고 잔잔한 명상에 잠기게 한다"고 했다.

  '잔잔한 명상에 잠기게 한다'는 평론가의 말은 '난해하다는 추상미술'처럼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절제미와 리듬감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세속화된 모든 것을 색으로 덮어버린,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차 있는' 듯 하다.

   유화백은 "몬드리안을 존경한다"고 했다. 팔순이 다 된 화가지만 무서운 색이 있다. 여지껏 제대로 한번 써 보지 않았다는 검정색이다. "겨우 보라색을 죽일때 섞어보긴 했지만, 검정색은 섬짓하다. 그래서 내 작품에 검정색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작가의 색면은 ‘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가 보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확신을 주고 모더니즘의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면서 서정적 추상미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어떠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리기 보다는 사유와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조형세계를 탐색하는 작가 유희영의 이번 전시를 통해 가을을 맞아 사유의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화백은 "이번 전시는 투쟁의 진행형"이라고 했다. "'빨리 그렸구나'라고 보이겠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게 거칠수 없습니다. 저로선 최선을 다한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끝났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완벽한 예술이 어디있나요? 하하하" 전시는 11월 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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