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배상, 韓정부-기업-日기업 3자 기금이 최선” 신각수

기사등록 2018/11/09 06:00:00

최종수정 2018/11/20 09:10:17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관계 심각한 위기 직면

-일본 기업의 자발적 참여 열어줄 日정부 정치적 결단 필요

-안보-경제에서 한일 양국은 뗄 수없는 관계 인식 절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신각수 전 주일 대사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뉴시스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1.09.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신각수 전 주일 대사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뉴시스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신각수 전 주일대사

<김현호의 넛지인터뷰>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서울법대 재학중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주일대사관 1등서기관과 외무부 동북아1과장(일본과장) 등 주로 일본과 관련된 직책으로 외교관 경력의 전반부를 보냈다. 이후 조약국장과 유엔주재 차석대사, 이스라엘 대사, 외교부 2차관과 1차관 등을 거쳐 2013년 주일대사로 외교관 생활을 마감했다.
국제법 박사인 그는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을 거쳐 지금은 법무법인 세종의 고문과 한일관계 증진을 위한 사단법인 세토포럼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한일 관계와 북핵문제 등에 관해 최고 전문가로서의 경륜을 펼치고 있다.
그는 조선 세종때 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숙주의 후손이다. 신숙주는 ‘해동제국기’에서 당시의 일본 지리와 정세를 상세히 기술했고 일본과 좋은 관계를 가질 것을 성종에게 유훈으로 남겼다. 그로부터 거의 600년이 지난 오늘, 신숙주의 탁월한 국제감각과 실무능력을 이어받은 듯한 그의 후손이 한일 관계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양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에서 역사의 윤회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지금 한일 관계는 어떤 상황인가.

“한마디로 장기 불황이다. 긴 터널 속에 들어왔는데 출구의 불빛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1965년 국교수립이후 53년간 양국 간에는 5~6번의 위기가 있었다. 1970년대 김대중 납치 사건이나 문세광 사건 때는 국교단절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당시는 빠른 시간 내에 위기가 해소됐다. 이후 과거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비교적 단기간에 진정이 됐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는 장기간 지속되는데다 원인도 복합적이다. 복합골절 상태라고 해야 하나.”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한일 관계가 위기로 치닫는 배경에는 구조적 문제들이 깔려 있다. 첫째는 한일 양국에서 전후세대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고, 둘째는 한일 간 격차가 많이 해소됐다는 사실이다. 셋째는 지정학적 요인으로 중국 부상에 따른 동북아 세력 전환이 진행되고 있고, 넷째는 양국 간 평형수 역할을 하던 정치권 간의 관계가 약화됐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일본 사회의 보수 우경화 경향과 양국의 정치 지도자 요인도 작용하였다. 가령 박근혜 정권 때 박 전 대통령은 대일 자세가 매우 완고하였고, 아베 총리는 일본 자민당 우파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에 위치하는 정치인이라 서로 좋은 관계를 갖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면서 한일 간에는 과거사 문제, 독도 문제, 지정학적 문제, 국민감정 악화등 4개의 단층선이 생겼다. 양국 간 국민감정은 2012년부터 나빠진 상태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2011년에 63% 정도로 피크였다. 그러다 2012년 위안부 문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등으로 30% 초반으로 순식간에 급락했다. 양 국민 사이에 신뢰이해인식기대 등에서 간격이 벌어지면서 한국에서는 반일 감정이, 일본에서는 혐한 감정이 강화되는 악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때 주일 대사로서 일본 외무성에 초치된 것으로 안다. 그로부터 6년 만에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주일대사가 초치됐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2012년 8월 10일,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당일 일본 외무성에 불려갔다. 같은 달 17일, 24일, 31일에도 초치당해 네 번 연속 불려갔다. 한일 외교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이어, 일왕이 방한하려면 무릎꿇고 사죄해야 한다거나 일본의 힘이 떨어졌다는 등의 발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당시 어느 정도 수습이 되어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리셋을 기대했는데 2015년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일시 좋아졌다가 다시 악화된 이래 지금까지 회복할 모멘텀을 찾지 못한 채 장기화에 따른 악영향이 누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한일관계의 토대가 돼 온 1965년 체제의 한 축인 청구권협정의 근간을 흔든다고 보아 매우 위중한 사태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나.

“한일 관계가 더욱 경색될 우려가 크다. 아베 총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고, 고노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책임져라“고 하는 등의 강경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 올렸다. 이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 교섭 때 양국간에 메우기 힘든 간극이라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이견 합의’를 통해 수면 아래로 내려놓은 것인데, 이번 판결을 통해 과거의 본질적 대립을 재연시킬 우려가 있다. 또한 이번 판결로 청구권협정의 둑이 무너짐에 따라 일본 식민지배와 관련된 우리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가 분출할 가능성이 커졌다.
 2005년 우리 정부는 한일국교교섭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해 청구권 협정에서 해결된 것과 해결되지 않은 것을 정리했다. 이때 위안부문제, 사할린 한인 문제, 한국내 원폭피해자 문제 세 가지가 해결 안 된 걸로 보았다.  그외는 해결됐다고 본 것이고 강제징용문제도 포함됐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부의 이런 기존 입장과 어긋나는 것이다. 또 대법원은 2012년 5월 유사한 사건에서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많은 함의와 복잡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신각수(왼쪽) 전 주일 대사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뉴시스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2018.11.09.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신각수(왼쪽) 전 주일 대사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세종에서 뉴시스 김현호 상임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나.

“정부가 사법부 판결을 충실히 존중하겠다면 기존 입장을 바꿔야 하고, 그러면 정부의 공신력과 외교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청구권협정까지 무력화 시키면 일본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우리정부와 일본의 관련 기업, 그리고 청구권을 사용했던 한국 기업 등 3자가 기금을 설립해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는 방식이다. 일본정부는 어쨌든 청구권협정으로 한국정부에 배상을 했으니 제외시켜야 한다. 독일은 2000년 미국과의 행정협정을 통해 미국 내 소송취하를 조건으로 정부와 기업이 절반씩 내 재단을 설립해 유대인과 동유럽 강제노동 피해자들에게 보상했다. 일본기업들도 2012년 우리 대법원이 피해자의 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을 했을 때 이 판결을 이행하려 했으나 일본정부의 거부 지침 때문에 재판을 계속했다. 
 이번에 일본기업의 자발적 참여 형태로 3자 출연 기금을 만들면 청구권협정 체제가 흔들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은 일본 정부가 기업의 배상을 막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이미 일본의 3개 회사(가지마건설, 니시마츠건설. 미츠비시머티리얼)가 재판상 화해를 통해 중국 노동자들에게 사죄를 표명하고 기금을 통해 보상한 전례도 있으니 일본 정부가 좀더 대국적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국정부와 한국기업이 보상을 하는 것이 가장 깨끗하고 일본에 역사적 부담을 주는 방법이겠지만 이는 일본기업이 보상하라는 대법원 판결 취지에 맞지 않는다.”

-중국과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차이점은 있다. 한국은 정부가 청구권자금을 받았고 중국은 공식적으로 배상금을 전혀 받지 않았다. 또 중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라 전쟁을 하였기 때문에 전쟁배상의 문제였다. 그러나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은 아니지만 약 3.6조 엔규모의 ODA(공적원조자금)를 지원 받았다. 그러고도 일본이 중국에는 개인적 배상을 하면서 한국에는 청구권 협정을 이유로, 또 식민지배상과 전쟁배상의 차이를 거론하며 일본 기업이 개인 보상을 하는 것마저 가로막고 나서는 것은 협량한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 판결에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판결의 근거가 주로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 차원에 머물렀다는 점이다. 징용 피해자의 인권 침해를 구제한다는 차원, 즉 인류 보편의 인권적 차원으로까지 논리를 넓혔더라면 국제적으로 설득력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 정부의 예상되는 대응은.
 
“일본은 한국 정부가 책임지라는 것 아닌가. 우리 정부의 입장이 정해지면 일본이 구체적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나 중재 요청, 그리고 투자보호협정에 따른 투자자국가소송을 원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이런 절차를 밟기 시작하면 문제가 커지고 접점을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 정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 차원의 대책을 강구한다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게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해법을 제시하고 일본 정부와 여론 및 국제여론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펼쳐야 한다. 일본은 이미 한국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자신의 논리와 입장을 적극 개진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푸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평소 아쉬움이 많았다. 내가 외무부 동북아과장(일본과장) 때 사할린 한인 문제가 제기됐다. 일본과의 치열한 논쟁과 협의를 통해 협력적 해결의 틀을 만들 수 있었다. 사할린 한인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할 때, 땅은 우리 정부가 제공하고, 집 건축비는 일본이 대며, 또 항공료는 일본이, 한국에서의 생활지원금은 우리가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일방이 모두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것이 아니라 양국이 서로 협력하면서 풀어가는 방식과 틀을 만들어 순조롭게 풀었다. 청구권 문제도 1965년 당시 우리 사정이 어려워 미처 챙기지 못했던 부분들을 지금이라도 양국이 협력적으로 풀어 가면 화해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다. “

-문재인 정부 들어 과거사 문제가 계속 현안이 되고 있다. 현 정부의 대일 외교는 바람직한가.

“현정부가 출범 당시 일본에 대해 투 트랙 접근 방식을 내세운 건 잘했다고 본다.  과거사는 그것대로 접근하면서 현재와 미래의 협력사업은 별개로 추진한다는 자세와 방침 표명은 옳았다. 문제는 그런 원칙에 행동이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안부 합의문제가 대표적이다. 상대가 있는 외교협상에서 사실 합의문 기본 내용만 본다면 그보다 나은 해결책은 어려울 것이다.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위로와 설득 작업이 미흡했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또 아베 총리가 다른 소리 못하게 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제대로 잘 안 돼 결국 2016년 12월 부산에 소녀상을 세우게 되면서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위안부 합의 과정을 검증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일본도 (위안부 문제의 일본정부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지 않았나. 문제는 검증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든지 해서 문제를 풀고 양국 관계를 진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문제를 파헤쳐만 놓고 사실상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합의를 이행하지도 않고 재협상도 요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과거사 문제가 현안이 돼버리니 투 트랙 정책이 어려워지고 결국 원 트랙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 역시 또 다른 과거사를 새로운 현안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 외교의 최대 현안인 북한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역할은 무엇이고 한일 협력관계는 어떤 중요성을 갖나.

“우리 외교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 우리 인식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너그럽게 평가하고, 일본은 짜게 평가하는 경향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크다고 하지만 일본은 올해가 메이지유신 150년이고, 세계 2대 경제대국으로서의  40년 기간이 축적돼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40년간 축적한 역량이 얼마나 될까. 플로우(flow)인 성장률만 보지 말고 스톡(stock)인 국부도 봐야 한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일본의 역할이 과소 평가돼선 안 된다. 무엇보다 북핵 위협 제거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이해가 일치한다. 주일 미군의 존재로 인해 북핵 타격 대상은 한국 다음에 바로 일본이다. 우리가 종종 잊고 있지만 미국이 일본을 통해 아시아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동아시아의 역외 국가인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 역내에서 가장 필요한 나라는 일본이다. 지도를 펴면 중국을 막고 있는 제방같은 나라가 일본이다. 미국은 일본과의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한다. 물론 한국의 역할도 작지 않다. 그래서 미국은 한일관계의 악화를 우려하고 늘 관찰한다. 박근혜 정부 때 한일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자 처음엔 일본의 책임이 큰 것으로 보고 주일 미국대사가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항의하는 성명을 냈지만 나중에는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완고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한일관계의 악화는 한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미국이 만약 북한핵을 일정 부분 용인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와 핵확산 방지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힘을 합쳐야 한다. 한국과 일본이야말로 북한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일본의 대북정보력도 우리에겐 중요하다. 일본의 공중 정찰력과 조총련 등을 통한 대북 정보수집 능력은 우리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투입될 때도 일본의 협력이 불가결하다. 일본에는 유엔사 후방기지 7개가 존재한다. 미본토에서 지원 병력이 올 때는 일본의 항만과 공항 등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긴급사태시 우리와 협력해야 할 대상이 일본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어떤 상황인가. 북한 비핵화를 이루려면 6자회담 참가국(한 미 일 중 러 북)에서 ‘1(북한)대 5’의 구도가 돼야 한다. 작년 말에 그런 구도가 됐지만 지금은 깨졌다. 2008년 이후 나빴던 북중관계가 현저히 개선되고 최근 북중러 3국 외무차관 회의가 열려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북방 3각이 굳건하게 짜여진 셈이다. 그런데 남방 3각은 한미간에 미묘한 이견이 존재하고 한일 간에는 관계가 좋지 않다. 6자의 구도가 ‘1대 5’에서 ‘3대3’ 또는‘3대 2대 1’ 정도로 변한 국면이다. 일본과 중국관계도 지난 달 아베의 방중과 시진핑의 내년 방일 예정 등으로 개선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상업적 이해관계로 보고 신고립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중국 러시아 등과의 관계에서 서로 유익한 레버리지로 쓸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베의 개헌 추진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지향하는 개헌은 실질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을 헌법에 보장하겠다는 뜻이다. 일본은 이미 ‘해석 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보다 좁게 적용하고 있다. 개헌안은 국회는 통과하겠지만 국민투표에서 과반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 여론조사는 반대가 약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 중국이 부상하고 공세적 외교안보정책을 추구하는 양상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은 손발을 묶고 있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가령 집단적 자위권이 없다면 미일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은 일본을 돕겠지만 일본은 미국을 도울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물론 일본이 지나치게 우경화하는 것은 우리가 미국과 함께 견제해야겠지만, 동북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따른 일본 스스로의 대응에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능사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본다.”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주력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를 둘러싸고 시시포스 신화처럼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종종 변곡을 겪는 상황이다. 역사공동연구와 같은, 역사의 정치화를 막고 전문가들에 의한 공정하고 객관적 서술을 확보해가는 중장기적 기재가 필요하다. 교과서가 안 되면 참고서라도 한일 간 공동 교재를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양국 국민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이를 기반으로 화해하고 이해, 기대, 신뢰, 배려를 쌓아갈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1963년 엘리제조약(양국 교류협력조약)에서 각 분야의 포괄적 협력관계를 담으면서 청소년 등의 대규모 교류를 추진했다. 이러한 화해 노력이 EU 통합과 독일통일을 촉진한 것이다.
한일 양국 국민이 가치는 공유하면서도 감정은 공유하지 못하는 현실을 극복하자면 끊임없이 교류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 양국간 방문객 숫자가 올해 1천만을 넘을 전망이지만 일본을 찾는 한국인이 8백만으로 일본관광객의 4배에 달해 불균형이 심하다.
 대학 3학년 때 국제대학생회의에 참가해 일본 각지를 한달 간 둘러본 것이 일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대사로 근무할 때는 2년간 일본의 47개 도도부현을 모두 찾았다. 서로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데는 만나고 이야기하는 이상의 방법이 없다. 양국 관계가 나쁠수록 교류 행사마저 끊을 게 아니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두 나라 국민들은 그동안 서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시달려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협력을 하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가령 동북아 수퍼그리드(공동전력망)를 형성하거나 공동으로 몽골 고비사막에 대규모 풍력발전 설비를 건설하는 일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양국은 2002년 월드컵을 공동 개최해 협력에 박차를 가한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게 이어져야 한다. 한일 양국은 정치 지도자의 영향력이 큰 나라이다. 최고지도자의 성향이 좀 다르더라도 자주 소통해야 한다. 20년 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간에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 나왔는데 이런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고. 한일 FTA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한국의 관용과 일본의 반성 사죄가 결합해야 역사 문제를 풀 수 있다. 무지, 오해, 편견을 버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각자의 기준이 아니라 세계의 보편적 기준에서 상대를 바라봐야 이웃국가이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안정되게 풀어갈 수 있다.“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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