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강화중성 방어 목책 치·외황 확인

기사등록 2018/12/06 15: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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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ociate_pic4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 발굴 조사 지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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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사에서 고려 시대 강화중성의 방어시설과 도랑이 확인됐다.

(재)한백문화재연구원은 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진행 중인 인천 강화군 옥림리 주택신축부지에 대한 소규모 국비지원 발굴 조사에서 강화군 향토유적 제2호 고려 시대 강화중성을 방어하는 시설인 목책 치(雉)와 성벽 밖을 둘러서 판 도랑인 외황(外隍)을 처음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고려 조정은 1232년 몽골 침략에 맞서 강화도로 천도했다. 이후 강화는 1270년까지 39년간 고려 도성 구실을 했다. 대몽 항쟁 당시 강화도성은 내성을 비롯해 외성, 중성이 차례로 축조됐다. 성벽 3겹을 둘러싼 요새가 구축됐다.
 
이 중에서 '강화중성'은 흙을 다져 조성한 둘레가 약 8.1㎞에 달하는 토성이다. 이번에 발견한 목책 치와 외황이 확인된 지점은 강화중성이 시작하는 강화읍 옥림리의 옥창돈대 부근에 해당한다.


associate_pic4 강화 옥림리 주택신축부지 발굴조서 지역 전경
조사 결과, 강화중성 토성 벽에서 밖으로 돌출한 능선부에서 고려 시대 강화중성과 함께 만들어진 방어 시설인 목책 구덩이, 외황, 초소를 처음 발견했다. 신라 토기 폐기장도 확인돼 신라 시대부터 이곳에 군사용 방어 시설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판단도 가능해졌다. .

확인된 목책 구덩이는 모두 9기다. 능선을 따라 한 줄을 이루는 형태다. 이는 성벽 외부로 돌출한 능선에 치를 만든 흔적으로 추정된다. 기둥 자리 흙을 인위적으로 파낸 뒤 나무 기둥을 뽑아내 치를 허물고 다시 메운 상태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몽골은 고려와 전쟁을 끝내려고 강화협정을 맺으면서 강화도성를 허무는 조건을 내걸었다. 강화협정이 이루어진 뒤, 실제로 몽골 관리가 성벽을 허무는 과정도 감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번 조사에서 기록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됐다.

외황1과 외황2가 목책 치를 겹쳐서 둘러싸고 있다. 외황1은 풍화암반층을 'L'자형으로 파고 바깥쪽을 돌과 흙으로 성벽처럼 다져 올려 도랑을 만들었다. 외황2는 풍화암반층을 'U'자형으로 파내고 파낸 흙을 바깥쪽으로 쌓아 올렸다.

 강화중성 조사 과정에서 흙을 다져 쌓은 토성으로 확인된 적은 있지만, 성벽 외부에서 치나 외황과 같은 별도 방어시설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는 고려 강화중성 성벽 구조와 형태 규명, 앞으로 고려 도성 보존·정비를 위한 새로운 자료 축적 등에 의미가 있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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