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시인과 프랑스 곡예사의 사랑...막상스 페르민 '눈'

기사등록 2019/02/11 15:29:39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아는 것은 단 한 가지, 슬프고 아름다운 사실이었다. 그는 늙어가리라는 것. 그래서 어느 날 죽으리라는 것. 그녀에게 걸린 사랑은 죽지 않으리라는 것. 얼음 속에서 잠들어 있는 얼굴도 늙지 않으리라는 것."

프랑스 작가 막상스 페르민(51)의 소설 '눈'이 번역·출간됐다. 일본의 하이쿠 시인과 프랑스 곡예사의 2대에 걸친 사랑 이야기다.

하이쿠는 17음절로 이루어진 석 줄짜리 서정시다. 거기에 단 한 음절도 덧붙일 수 없는 고밀도의 시다.

19세기 말 일본, 젊은 유코는 완벽한 하이쿠를 짓기 위해 수련의 길을 택한다. 일본 남쪽에 사는 하이쿠의 대가를 찾아가 제자가 된다. 누가 누구에게서 배우는지 모를 정도로 깊은 예술적 교감을 주고받는다.

간결하면서 정교한 문체가 이 소설의 매력이다. 하이쿠 시인이 경험하는 예술과 사랑은 자신의 삶·예술을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이끌고자 하는 페르민의 열망과도 닮아있다.

"눈은 한 편의 시다. 구름에서 떨어져내리는 가벼운 백색 송이들로 이루어진 시. 하늘의 입에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시이다. 그 시는 이름이 있다. 눈부신 흰빛의 이름. 눈."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흘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그녀는 단순한 곡예사가 아니었다. 마법에 의해 공중을 걸었다. 가장 먼 곳에 서 있는 몸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하얀 불길 같았다. 눈의 여신 같았다. 그녀에게 가장 어려운 건 균형을 잡는 일도 공포를 누르는 일도 아니었다. 현기증으로 멈출 때마다 출렁이는 음악의 선을 걷는 일은 더욱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건 세상의 빛 속에서 나아갈 때 한 송이 눈으로 변하지 않는 일이었다."

옮긴이 임선기씨는 "이 시적인 소설은 유코와 소세키, 봄눈송이와 네에주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나비 날개처럼 겹치는. 이 이야기는 프랑스와 일본 사이에서 한국의 내게 날아왔다. 나는 이야기 속을 걸어가며 무수한 눈을 만났다. 그리하여 모두가 다르며 하나인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것은 너와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모르고 있던, 나는 읽은 적 없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124쪽, 1만2000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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