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괌 전략자산 철수 요구"…靑, '비핵화 정의' 헛다리 짚었나

기사등록 2019/03/22 16:03:53

최종수정 2019/03/22 16:19:22

앤드루 김 비공개 강연 발언에 촉각···대응 자제 '로키'

靑, '북미 비핵화 개념 차 없다'→'운영적 정의 고민' 선회

【서울=뉴시스】지난해 6월 뉴욕에서 열린 북미고위급 회담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부부 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모습. 당시 참석했던 앤드루 김 당시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사진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2018.06.01
【서울=뉴시스】지난해 6월 뉴욕에서 열린 북미고위급 회담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부부 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모습. 당시 참석했던 앤드루 김 당시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사진출처: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 2018.06.01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북미 간 '완전한 비핵화'의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던 청와대가 미국 측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상반된 메시지에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비핵화 협상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비핵화 개념 정의'에 대한 북미 양측의 정확한 개념 파악 없이 중재 노력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막후에서 비핵화 협상에 개입했던 앤드류 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비핵화 협상의 결렬 원인을 전적으로 북한 책임으로 떠넘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재안을 모색하고 있는 청와대로서도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김 전 센터장은 지난 20일 서울에서 열린 스탠퍼드대 동문 초청 비공개 강연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의 비핵화'와 미국의 비핵화 개념이 대단히 달랐으며, 특히 북한은 괌, 하와이 등 미국 내 전략자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합의가 결렬됐다"고 말했다.

또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한국의 중재 역할이 언론을 통해 부각되는 것에 미국이 청와대 측에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고도 보도했다.

김 전 센터장은 이어 이튿날인 21일 청와대를 찾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공개 강연에서 주장한 북미 간 비핵화 개념에 대한 인식 차와 한미 불협화음에 대한 미국 내 우려의 목소리 등 관련 내용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 실장과 김 전 센터장의 만남 여부에 대해 "국가안보실은 일상적으로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있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대응을 자제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 정보기관 인사의 만남 여부에 대해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확인하기 어렵지만,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있다"는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사실상 만남 자체는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핵화 협상 결렬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린 김 전 센터장의 발언은 최근 보이고 있는 미국의 입장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하노이 노딜' 이후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 개념에 대해 영변 이외의 핵시설 폐기는 물론, 탄도미사일, 대량살상무기(WMD)의 폐기까지 의미한 것이라며 공세적 대북 압박에 나서고 있다.

외교가 안팎에서는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개념으로 '비핵화 문턱'을 한 차례 낮췄던 미국이 과거 내세웠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보다 오히려 훨씬 까다롭게 문턱을 높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이 취해야 할 조치의 개념은 명확히 한 반면, 반대급부로 자신들이 제시해야 할 보상에 대해서는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 보장'이라는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율배반적이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언급한 "미국의 '괴짜같은(eccentric)' 협상 방식"도 이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 있다.

북한이 괌·하와이 등 미국 내 전략자산을 없앨 것을 요구해 '하노이 담판'이 결렬됐다는 앤드루 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미 간의 갈등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라는 과거 고수하던 전략보다 더 큰 개념을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도출 과정에서 남한에 위치한 주한미군의 전술핵무기 철수를 주장한 바 있다. 협상 진행 도중 1991년 9월28일 조지 H.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배치 전술핵무기 철수 및 폐기 선언'을 발표, 100여개의 전술핵무기가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됐다.

하지만 괌·하와이 등 미군 기지에 배치된 전략자산의 전개 금지 요구에 그치지 않고 아예 전략자산 자체를 철수하라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카드를 던진 것이다. 자주적 방어권을 강조하는 북한이 거꾸로 미국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요구를 꺼낸 것은 판을 깰 작정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미국이 괌·하와이 기지 등에 배치된 장거리 전략폭격기 B-52, 초음속전략폭격기 B-1B 랜서, 스텔스폭격기 B-2 스피릿, 스텔스 전투기 F-22 등에 전술 핵폭탄 B-61을 싣고 언제든 북한을 타격할 수는 있는 잠재적 위협은 존재할지 몰라도 이를 없애라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앤드루 김의 이러한 발언은 철저하게 계산된 미국의 전략적인 메시지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북한이 애초부터 비핵화 협상에 응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으로, 협상 결렬의 책임이 전적으로 북한에 있다는 사실을 부각하기 위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 장관은 지난 19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불신(deep distrust)'이 있으며 김 위원장이 실제로 (비핵화를) 이행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 대북 신뢰에 여전한 의문을 제기했다.

【워싱턴=AP/뉴시스】13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인권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2019.03.14
【워싱턴=AP/뉴시스】13일(현지시간) 미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인권보고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2019.03.14
이 같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지난해 초기 비핵화 대화 국면에서 추후 불거질 수 있는 북미 양측의 비핵화의 개념 정의 문제를 낙관적으로 평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8일 앞둔 4월18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과 미국이 갖고 있는 비핵화 의미가 다른데, 문 대통령이 각각 북미가 생각하고 있는 비핵화가 무엇인지 우선 명확히 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질문을 받았다.

당시 고위 관계자는 "비핵화 의미가 나라마다 다르다고 저희는 보지 않는다"며 "비핵화 정의에 대해서 미국과 협의하고 있다. 한국·미국·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가 같다고 보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후 11개월이 흐른 시점에서 청와대의 판단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비핵화의 '운영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는 새로운 개념을 끄집어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17일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비핵화에 대한 '운영적인 정의'에 대해서 고민해볼 때"라며 "어떤 상태가 돼야만, 어떤 시설이 어떻게 해체돼야만 북한이 핵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고 지난 30년 간 비핵화 논의 과정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며 "따라서 이것(정의)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이루느냐하는 것이 앞으로의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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