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방한에 호르무즈 파병 '뜨거운 감자'로…文대통령 의중은

기사등록 2019/07/23 18:05:15

靑 "다양한 대안 검토 중"…국방부 "가능성 열어놓고 예의주시"

한국 찾은 볼턴 '인도·태평양 안보' 공개 언급…파병 압박 시사

【도쿄=AP/뉴시스】일본을 방문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07.22.
【도쿄=AP/뉴시스】일본을 방문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07.22.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방한 과정에서 중동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 이슈가 부상하고 있다. 한미동맹에 있어 전통적으로 '뜨거운 감자'로 꼽히던 파병 문제가 어느 수준으로 다뤄질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박2일 간 일본 방문 일정을 마친 볼턴 보좌관은 23일 오후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한국에 도착했다. 2박3일 간 한일 연쇄 방문의 연장선이자 본격적인 방한 일정이 시작됐다.

볼턴 보좌관은 방한 첫날 별도의 일정을 잡지 않고 24일 있을 한국의 외교·안보라인과의 연쇄 회담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국대사 측 인사와 회의를 통해 논의할 의제 등을 가다듬은 것으로 전해졌다.

볼턴 보좌관은 방한 기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잇따라 만나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갈등 상황과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등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AP통신과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볼턴 보좌관은 앞서 일본 방문 기간 동안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상,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과 회담을 갖고 한·일 갈등 해결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볼턴 보좌관은 고노 외무상을 만난 뒤 취재진에 "폭넓은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특히 미국이 중동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민간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연합체에 일본이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의견을 교환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방한 기간에도 관련 논의가 무게감 있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볼턴 보좌관이 베네수엘라 사태와 함께 핵협정 파기로 촉발된 이란 문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한일 방문의 궁극적인 목적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한일 양국의 파병 요청에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로 백악관은 볼턴 보좌관의 출국에 앞선 지난 19일(현지시각) 한국 등 60개국 관계자들을 상대로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과 보호의 필요성, 호위연합체 구성에 대해 브리핑을 하는 등 연합군 형성 작업에 본격적인 착수 움직임을 벌인 바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아직 한국 정부에 파병에 대한 공식 요청은 없었지만 볼턴 보좌관의 방한을 계기로 미국이 공론화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의용 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의 만남에서 파병에 대한 언급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다.

노재천 국방부 부대변인은 지난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 파병 가능성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파견을 공식 요청받은 사실은 없다"면서도 "우리에게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3일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대안들을 검토 중에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청와대 내부적으로 미국으로부터 공식적인 파병 요청은 없더라도 대비 차원에서의 사전 검토 정도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볼턴 보좌관의 방한과 파병 요청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안보 무임승차' 인식을 갖고 있는 데다, 한국이 원유 70%의 이상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무조건 파병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기반한 인식으로 볼 수 있다.

【워싱턴(미국)=뉴시스】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04.11.
【워싱턴(미국)=뉴시스】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모습. (사진=뉴시스DB). 2019.04.11.

특히, 일본이 만일 선제적으로 자위대 파병을 결정한 뒤에 우리 정부의 파병 결정이 이어진다면 그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한일 갈등에 대한 중재를 요청한 상황에서 선제적 파병 결정이 미국을 움직이기에 적합한 카드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을 움직이는 직접 카드로써의 파병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다만 볼턴 보좌관의 이번 방한과 파병의 개연성이 아주 없다고 보기 어려운 점, 만일 우리가 일본을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면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파병과 관련한 긍정적 입장은 자서전 '운명'에 소개돼 있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 '가장 고통스러운 결정'으로 꼽았던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 "국익을 위해서라면 필요시 파병할 수 있다. 그것이 국가경영"이라고 긍정적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이라크 파병이 우방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는 다하면서도 결과적으로 6자회담을 통한 북핵위기 해결에 큰 도움까지 됐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인식이다. 당시 이라크 파병을 격렬히 반대한 시민·사회진영을 이해할 수 없다며 서운함을 드러낸 대목도 자서전에 소개돼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카드로 미국을 자극하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한일 갈등 해결에 미국을 끌어들이는 방법보다는 미국이 원하는 파병 카드로 접근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가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GSOMIA 폐기를 언급한 것은 중국 봉쇄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패착으로 평가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GSOMIA를 폐기하면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쪽 축인 일본 축이 구멍나는 것으로, 미국이 이를 가만히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볼턴 보좌관은 이날 한국에 도착한 뒤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인도·태평양의 안보와 번영에 필수적인 우리의 핵심 동맹이자 동반자의 지도자들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길 기대한다"며 군사 협조와 관련한 기대감을 에둘러 나타냈다.

호르무즈 해협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서쪽 핵심축인 인도의 왼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볼턴 보좌관이 공개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를 거론한 것은 방한 기간 파병과 관련한 이슈를 논의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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