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옻칠 자개 회화 20점 전시
이화익갤러리서 개인전 31일까지

에테르 Aether, D130cm, soil powder, hemp cloth, lacquer, pure gold leaf, mother of pearl, crystal, 2025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내 그림은 별빛처럼 잠깐 반짝이지만, 우주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고요한 블랙홀, 눈부신 은하계, 그 사이의 무한한 공간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여정이다. 이 작품들은 광활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고독과 경외감, 그리고 그 모든 것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희망의 파편을 담고 있다"
13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오명희(69)화백은 천상 화가였다. "작업은 제 구원"이라며 "세상에 ‘오명희’라는 이름이 생기기 전부터, 저는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이 말처럼 밀도가 높은 작품은 그의 영혼을 갈아 넣은 흔적이다. 원형 캔버스 위에 펼쳐진 옻칠과 자개, 금박의 화면은 강렬한 생기를 품고 있다. 자개 조각들은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흩어지고, 그 중심에서 퍼져 나오는 정제된 에너지에 이끌리듯 화면에 빠져들게 한다.
![[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13일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오명희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5/13/NISI20250513_0001841333_web.jpg?rnd=20250513165753)
[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 13일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오명희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이화익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 Aether in Bloom'은 ‘에테르(Aether)’ 시리즈와 ‘제니스(Zenith)’ 시리즈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전시 작품과 작업 세계관을 들어봤다.
이번 개인전 ‘피어나는 빛, 봄의 숨결’은 어떤 영감에서 시작되었나요?
제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괴로워하셨어요. 어느 날 밤, 달이 유난히 밝았는데 어머니가 우물가에 계셨어요. 뭔가 술렁이는 분위기였고, 이후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 달 밤의 감정이 강하게 남아 있어요. 벙어리 처녀를 아버지 방에 들인 날이었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그 기억이 제 작업의 발단이 됐어요.
대표작 ‘에테르(Aether)’ 시리즈에는 어떤 상징과 서사가 담겼나요?
마릴린 먼로가 6.25 전쟁 당시 위문공연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눈 오는 날 끈나시를 입고 열심히 공연을 했대요. 따뜻한 봄 같은 순간이죠. 자서전을 보면 무대 공포증도 있었고, 백치미로 몰려서 괴로움도 많았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참 감동이었어요.
제 그림은 화사하지만, 예쁘다고만 보면 공감 못 해요. 그 안엔 삶의 애증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있어요. 나이로비 국립뮤지엄에서 기생을 주제로 작업한 것도 그런 맥락이죠. 돌출된 달을 표현하고 싶어 우리 전통 노래인 강강수월래를 떠올렸어요. 강강수월래 노래를 하듯 자개를 빙빙 돌려서 작업했죠. 부조 형태의 원형 바탕이 된 그곳에 달도 있고 빛이 있죠.
최근엔 자연을 직접 손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옻칠을 장갑 낀 손으로 그리기도 해요. 이제 제 작업은 달에도 스톤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우주의 광물질을 자개와 색으로 구현했어요. 설악산 비룡폭포에서 정기를 받은 느낌, 산청의 바위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신념 같은 것도 제 작업에 녹아 있어요.

Zenith, 194 x 130cm, pure gold leaf on canvas, mother of pearl, acrylic, 2025 *재판매 및 DB 금지
전통 재료인 옻칠, 자개, 금박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작업 과정에 있어 어려운 점이나 시스템 구축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요?
작가로서 슬럼프도 있었어요. 학교(수원대학 미술대학 교수) 가야지, 애 셋 키워야지, 그림도 그려야지… 시간이 없어서 화랑에서 작품 달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철렁했어요. 한때는 팔리는 게 싫기도 했고요. 그래서 일본 동경예술대학 객원교수로 가면서 작업세계가 달라지는 계기가 됐어요. 살랑이는 커텐처럼 내리는 벗꽃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때 금박도 배웠지요. 일본에서 시간을 가지고 좀 쉬고, 다시 힘을 얻었죠. 애들 기를 때 너무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짬을 내 15분 동안 집중해서 그리니까 많이 그리더라고요. 그래서 전 학생들한테도 “15분만 집중하면 많이 그릴 수 있다”고 말해요. 정말 그렇게 해왔으니까요.
![[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오명희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5/13/NISI20250513_0001841345_web.jpg?rnd=20250513170318)
[사진=박현주미술전문기자]오명희 화백 *재판매 및 DB 금지
작품에는 기억과 시간의 층위, 존재에 대한 철학이 느껴집니다.
남편과 함께 설악산에 자주 가요. 눈이 와도 가요. 그 산에 어떤 에너지가 있어요. 그걸 느끼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그 감각이 작업에도 들어가는 거죠.
박지성 선수의 장모님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작가로서 부담은 없으셨나요?

오명희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오명희 개인전 전시 전경 *재판매 및 DB 금지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하고 싶은 주제나 방향이 있다면요?
그림이 없었다면 삶이 버거웠을 거예요. 어릴 땐 만화를 그리느라 밤을 새웠고, 블라우스가 새까매질 정도로 그림을 그렸어요. 어떤 선생님이 저한테 “그림 안 그렸으면 무당이 됐을 사람”이라고 했는데, 진짜 맞는 말 같아요. 스카프가 날아가고, 구름 위에서 까르르 웃고, 신명나게 춤추는 그 장면. 그게 뭔지 알 것 같거든요.
한편 이화익갤러리와 오명희 화백과의 인연은 2024년 아부다비 아트에 참여하면서다. 길이 4m정도의 대형 작품을 포함한 3-4점의 오 화백 작품은 모두 판매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국의 여류작가로서 정체성을 갖고 K아트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그는 이제 세계에서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기억과 우주의 에너지’를 동시에 껴안는 화면, 정제된 공예적 노동과 깊은 감정선이 교차하는 회화 앞에서 관람자는 눈앞에 펼쳐지는 ‘빛의 우주’를 천천히 항해하게 된다. 전시는 31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