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딸은 진작 나를 뛰어넘어...한강 아버지 기분 좋아"

기사등록 2018/03/13 16:41:06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문자
  • URL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소설가 한승원. 2018.03.13. (사진=불광출판사 제공) photo@newsis.com
■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출간 간담회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강이가 나를 진작 뛰어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효도는 아버지보다 더 잘하는 것이죠."

한승원(79) 소설가는 13일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출간 간담회에서 딸 한강(48)이 소설 '흰'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또 다시 오른 것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한 작가는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목선'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그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미망하는 새',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꿈' '사랑', 시집 '열애일기' '달 긷는 집' '이별 연습하는 시간' 등 수많은 작품을 펴내며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현대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하지만 딸 한강이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이후 한 작가는 한강의 아버지로 더 많이 불리게 됐다.

이와 관련해 한 작가는 "'한강의 아버지'로 불리는 게 전혀 기분 나쁘지가 않다"며 "딸의 소설을 읽으며 늘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ssociate_pic5
이번 산문집은 말년의 시기를 지나면서 몸과 마음이 기억해내는 소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등을 고뇌한 글이 담겼다.

한 작가는 22년 전, 서울에서 고향 장흥으로 내려간 작가는 바닷가에 작은 집을 짓고 '해산토굴'이라 이름 짓는다. 그리고 그곳에 자신을 가둔 채 오롯이 인간 성찰의 도구로써 글을 써왔다.

포기하고, 버리고, 안에서 밖으로 중심에서 변방으로 벗어나겠다는 선택이었다. 덜컹거리는 심장을 달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이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하기 위해 벽을 쌓고 스스로를 유폐시키겠다는 선언이었다.

돌아보면 그의 삶은 수많은 벽 쌓기였다. 가령, 친일 이력이 있는 재벌회장의 전기를 써주면 3억 원을 주겠다는 제의를 거절하거나, 유약하고 게으른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아내와 자녀들에게 "이번 방학에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반드시 읽을 거야" "올해 장편 하나와 단편 2개를 꼭 쓸 거야" 등을 선언하고 기필코 해냈다.
associate_pic5
'무력한 목'에 스스로 '멍에'를 걸었다는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소박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에게 글쓰기는 곧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자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치열함, 작가의 글쓰기와 삶의 동력이 책에 담겼다.

이번 산문들은 '아버지의 의지와 상반되는 쪽으로 황소처럼 나아가던 아들'의 나날에서 자꾸만 '슬픈 눈이 되어버리는 늙은 아비'의 시간까지 작가가 통과해 온 세월을 아우르고 있다.

"별빛만 흘러내리는 어두운 바다 저쪽으로 숙부의 볏짐 가득 실은 목선이 사라진 뒤로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 광막하게 펼쳐진 바다의 거칠게 출렁거리는 물너울 위에는 신도 악마도 없었다. 오직 나와 들썽거리며 출렁거리는 마녀 같은 밤바다와 별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나의 참담한 실존을 알아차렸다. 거기에서 내 목선의 노를 저어줄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노를 젓기 힘들다고 잠시도 노 젓기를 멈추고 쉴 수도 없었다. 팔이 뻐드러지더라도 계속 저어야 했다."(27쪽)

"차를 마시다가 천장의 서까래들을 쳐다본다. 나는 늘 기다리며 산다. 딱히 찾아올 반가운 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기다린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전화질을 하지 않는다. 만일 전화질을 하면 그들이 나를 절대고독 이기지 못하고 엄살떠는 겁쟁이라고 흉허물 할 터이다. 소월도 그랬을 터이다. 기다리며 슬픈 고독을 시로 읊었을 터이다. 나는 소월의 시를 읽으면서 고독 이기는 법을 배운다."(114쪽)

그는 책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치열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어둠 속에 묻어두는 것도 나이고,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도 나이다. 나를 어둠 밖으로 끌어내려고 분투하라." 352쪽, 불광출판사, 1만6000원.

 snow@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