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시집]기혁 '소피아 로렌의 시간'·강희안 '신발 신겨주는 여자'

기사등록 2018/12/13 06:31:00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소피아 로렌의 시간

2010년 '시인세계' 신인상 시 부문,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기혁의 두번째 시집이다. 시 65편을 담았다.

'어린 아들이 변신 자동차 또봇을 가지고 놀다가/ 변신이 되지 않자/ 화를 낸다// 화는 아들의 무언가를 집어 던지고/ 무언가를 밟아버리고/ 무언가 억울한 것을 뒤바꾼다// 팔이 뽑힌 또봇을 어루만지면/ 어떤 아빠라도 수동적인 사람일 것이다'('오비디우스' 중)

'거스를 수 있는 신체는 없다// 오해는 낡았다는 말처럼 오래간다// 밀로의 비너스도 허기를 느낄까?/ 새까맣게 타버린 화롯가에서/ 욕설을 내뱉을까?// 모든 가능성이 가능성의 굴레가 될 때/ 믿고 싶은 것들이 스스로 이어질 때// 우리는 작아진다/ 자른 단면 속에서 점과 선으로 흩어진다/ 이성의 단백질 사이사이에서// 마침내 나는 천사/ 미각의 신을 모시는 전령/ 먹고사는 순간의 1등급 전문가'('마블링' 전문)

함돈균 문학평론가는 "시집에서 세계는 똬리를 틀고 있다"며 "현재는 까마득한 태고와 연결되고, 일상의 집은 황량한 인도 어느 사막으로 이어지며, 사물 세계는 유물들의 전시관이 된다"고 읽었다. "전 지구적으로 뻗은 문명론적 촉수는 또 다른 장소와 시간과 사물을 지시하며 연관을 맺고 있다. 타버린 도시의 폐허에 남은 그을음처럼, 세계는 지금 여기가 유일한 시간이 아님을 다만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여기는 지나간 시간의 잔해다."

기 시인은 "세계를 만지면 아프다"며 "상처의 역사가 강건하게 태어난다"고 한다. 171쪽, 9000원, 문학과지성사
◇신발 신겨주는 여자

1990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강희안의 시집이다. 젊은 날에 사랑하는 사람과 주고받은 편지를 헌시와 답글의 형식으로 묶어낸 연애시선이다. 시인은 젊은 날의 사랑을 상처 혹은 상처의 흔적이라 명명하지만, 시집 안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사랑의 정서가 녹아 흐른다.

'연애의 전술에도 고도의 심리전이 있나 봅니다 전략이 부재한 그대와 나는 서로에게 상흔만 남기고 휴전을 선언합니다 A와 O의 거리만큼 멀고도 먼 마음의 기슭을 밤새 떠돌았습니다'('연애의 심리전' 중)

'그대는 나의 말을 주워 삼키고는 목에 걸린 듯 다시는 뱉지 않습니다 나의 말에 돋친 가시가 그대 목구멍에 깊이 박혀 침묵의 방에 들었습니다 그대의 말은 음표가 생략된 직설의 날이므로 나는 서늘서늘 베이곤 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수만의 언어를 잃어버립니다'('침묵의 기교' 중)

강 시인은 "젊은 한 시절의 영사기를 되돌려 보면 동화 속 신데렐라를 만났던가 싶다"고 회상한다. "나는 유리 구두를 신겨줄 수 있는 그런 멋진 사내가 아니었던가. 깊은 밤 자정의 종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사라진 여자." 109쪽, 9000원, 천년의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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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시집]기혁 '소피아 로렌의 시간'·강희안 '신발 신겨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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