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신사망' 아현동 철거민 "모두 빼앗기고 쫓겨나"
신수동·장위동·개포동 등 곳곳 생존권 보장 투쟁
용산참사 10년인데...같은 아픔 반복될까 두려워
지난 2009년 용산참사로 가족을 잃은 전재숙씨는 작년 12월12일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달 4일 숨진채 발견된 아현동 철거민 박준경(당시 37세)씨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였다.
전씨는 이 자리에서 "그 사람(용산참사 희생자)들, 뭘 많이 달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추운 겨울에 그냥 내몰릴 수 없어 살아 보겠다고, 대화 좀 해 보겠다고 외쳤던 사람들이 학살됐다"고 10여년 전을 떠올렸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던 세입자와 전국철거민연합회 회원, 경찰, 용역 직원 사이의 충돌로 농성자 5명·경찰 1명이 숨지고 22명의 부상자가 나온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도시개발과 재개발 재건축 과정에서 반복되는 강제집행에 대한 수많은 논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 도심 곳곳에서는 같은 아픔이 반복될 위기가 계속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씨의 사망이 그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다. 박씨는 2016년 6월 관리처분 인가를 받은 뒤 재건축 사업에 착수한 아현2구역 철거민이다.
두 차례의 강제집행으로 거주할 곳을 잃고 개발지구 내 빈집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11월30일 또 한 번의 강제집행으로 기거하던 공간마저 잃게 되자 12월3일 한강에 투신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아현동 외에도 신수동 철거민들은 10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마포구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지속했고, 청량리·장위동·개포동·자양동 등에서 철거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이 진행 중이다.
서울시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꾸린 철거현장 인권지킴이단이 지난해 10월2일 '집행현장의 문제점과 법제도 개선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강제집행 과정에서 소화기 난사, 공포감 조성, 폭력 등의 인권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아현2구역 재건축 철거민대책위원회 이광남 위원장은 박씨의 추모현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용역 직원들을 동원해 무차별적인 강제 집행을 실시한다"며 "80세 노모가 사는 집 옥상에서 (용역 직원들이) 밤낮으로 쿵쾅대며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어쩌다 철거민이 된 것이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아니다"라며 "여러분의 이웃이었고, 친구일 수 있으며, 가족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용역 직원들은) 소화기 10대를 무차별적으로 난사했고, 현장에는 오로지 폭행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과 그들을 밀어내려는 사람들.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
'용산참사' 10년이 흐른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이처럼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를 '제2의 용산참사'에 대한 가능성과 우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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