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게 소원?' 그런 말 하지 마세요"[인터뷰]

기사등록 2024/04/16 07:00:00

최종수정 2024/04/16 07:26:12

곧 장애인의 날…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장 인터뷰

"자녀 장애 판정 후 나도 혼란…아이 위한 일 찾아"

자비로 방과 후 프로그램 운영…정부 제도로 확장

"성인 장애인 돌봄, 응급 조치, 고령화 등 논의 필요"

"부모 없어진 후에도 국가가 잘 책임지는 세상 돼야"

"아이들 잘 있다가 다시 만나는 날까지 뛰자고 해"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장이 지난 2021년 11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AW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37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 참석해 대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2021.11.04.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영환 기자 = 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장이 지난 2021년 11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AW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제37회 전국장애인부모대회에 참석해 대회사를 하고 있는 모습. 2021.11.0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다 가는 게 소원이라는 말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한다. 부모가 없어도 국가가 잘 책임져서 아이들이 잘 지내는 날까지 뛰어보자고 한다."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지난 15일 전화 인터뷰를 한 고선순 한국장애인부모회장은 지난 40여년간 중증장애 자녀를 키우면서 주변 장애 가족들을 물심양면 지원하며 희망을 전파해왔다.

고 회장의 둘째 자녀는 어릴 때부터 시각과 청각, 지적 중복 장애를 가졌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고 회장이 자녀를 업고 병원 통원치료를 다녔다.

고 회장은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으니 약물 치료를 포기하자고 했다. 그런데 어떤 부모가 죽어가는 아이를 포기할 수 있나"며 "그 말을 듣고 병원 퇴원을 시키고 하루에 두 번씩 업고 다니면서 통원 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그래도 밥을 잘 먹고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고 처음에는 나도 굉장히 혼란스럽고 힘들었다. 그러다 내가 이러면 우리 가정은 파탄이 날 수도 있겠다 싶어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이 아이가 진주보다 귀한 아이라는 걸 느끼고,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까 하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고 회장이 본격적으로 다른 가정에도 관심을 쏟게 된 계기는 주변에서 발생한 비극 때문이었다.

고 회장은 "그때만 해도 장애 아이를 낳으면 남편이나 시댁에서 '너 때문이야'라고 원망을 듣는 엄마들이 많았다. 내 주변에도 전날까지 친하게 잘 지내다가 갑자기 시댁 잔치에 가서 농약을 마시고 가버린(사망한) 경우가 있었다"며 "내가 저 분들에게 도움이 돼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한 중증장애인이 찾아와 어머니가 해주셨던 김장 김치를 다시 먹어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고 회장은 가족들과 함께 김장을 해 나눠졌고 이후 김장 나눔 봉사 활동을 하게 됐다.

고 회장은 "모두가 모여 김장을 나누고 하다 보면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애 아동의 부모들이 겪는 가장 큰 고충 중 하나는 돌봄이다. 학교 생활에는 적응하기 힘들고 아이를 맡길 시설도 마땅치 않아 집에서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녀의 돌발 상황에 하루 종일 부딪혀야 한다.

보호시설이 없다시피 했던 과거에는 부모가 아프거나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장애 아동을 대신 돌봐주기도 했다.

고 회장은 "주변에 힘들어서 목숨을 끊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아 남편과 상의해 사비로 건물을 얻어 학원을 차렸다"며 "여기서 만난 분들과 함께 가족 여행도 함께 다니고 있다. 한 가정만 여행을 가면 주변 시선이 따가운데, 전체적으로 버스 한 대 빌려서 가면 너무들 좋아하고, 서로 힘든 부분도 얘기하고 서로서로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후 봉사활동 중 만나게 된 강남대학교 특수학과 학생들과 함께 방과후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했으며, 이는 경기도에 전국 최초로 '365쉼터'가 개소되고 이후 정부의 긴급돌봄사업이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고 회장은 성인 장애인을 위한 돌봄 제도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수학교나 복지관을 이용하는 청소년, 청년 연령대가 지나면 중증 성인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제한적이라는 게 고 회장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에는 우리나라 대형 놀이공원의 5배가 되는 규모에 중증장애인 시설이 있어서 그 곳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놀며 가둬 놓지 않고 자신을 발산하게 해 어느 정도 치유가 되면 다시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시스템이 잘 돼있다"고 설명했다.

또 장애인을 위한 '119'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갑자기 머리를 쥐어뜯고 머리를 벽에 박으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밤새 그렇게 울부짖으니 부모가 응급실을 데려갔지만 이 아이가 폭력성을 보이니 받아주는 곳이 없었고 결국 병원 세 군데를 다니다가 새벽에 아이가 사망했다"며 "그 이후 자책을 하던 아버님이 시름시름 앓다가 6개월 후에 사망했고 어머님과 남은 자녀는 지금까지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119처럼 장애인이 응급 상황때 빠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장애인의 고령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40살이 넘으면 체력적으로 힘들어하고, 50살이 되기 전에 치매도 온다"며 "노인들은 장기요양보험 같은 혜택이 있는데, 장애인들은 연령대를 좀 낮춰서 그런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예전에는 자녀가 나보다 며칠만 먼저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는데, 나는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다"며 "어떻게 내 자식에게 먼저 가라고 말을 할 수 있나. 부모가 없어진 후에도 국가가 잘 책임져서 우리 아이들이 잘 있다가 다시 만나는 날까지 열심히 뛰어보자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자녀가 장애 판정을 받으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데 그렇다고 주저앉으면 온 가족이 살 수가 없다"며 "혼자 힘으로는 안 되는 것도 여러 명이 힘을 합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고 자꾸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우리 아이가 발을 탕탕 구르거나 툭툭 어디를 치거나 하는 자기 표현이 있는데 죄송하다고 몇 번을 해도 쌍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학교에서부터 인식 교육이 잘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게 소원?' 그런 말 하지 마세요"[인터뷰]

기사등록 2024/04/16 07:00:00 최초수정 2024/04/16 07:26:12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

기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