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의대 유치하자", 저기선 "증원 안돼"…정부 이중고

기사등록 2024/05/09 14:29:06

최종수정 2024/05/09 18:22:52

전남, 尹 신설 약속 이후 동-서부권 소지역주의 갈등

전남도 공모에 순천대 비롯 지역사회 반발하며 공전

국립대, 의대 아닌 교수사회 중심으로 학칙개정 제동

"학내 민주화" 생각보다 강해…구조조정 도미노 우려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지난 2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2024.05.09. kgb@newsis.com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지난 2일 서울시내 한 의과대학. 2024.05.09. [email protected]

[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의과대학 정원을 둘러싼 대학가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의대가 없는 전남에서는 국립의대를 너도나도 유치하겠다며 갈등하고 증원된 국립대는 학칙 개정을 두고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9일 교육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처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진통이 각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은 그만큼 의대가 다른 학과와 차별되는 '블루칩(대형우량주)'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학생 감소 속 우수한 신입생 유치에 용이하다는 측면에서 개별 지방대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지만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비수도권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에서도 의료 인프라 확충 관점에서 역량을 모으고 있다.

전남도가 '34년 숙원사업'으로 꼽는 의대 유치전은 서부권(목포대)과 동부권(순천대)의 갈등으로 비화한 상황이다. 당초 전남도는 지역 내 동·서부권 통합 의대 신설을 추진해 왔으나 현재는 이를 백지화하고 대학을 공모해 2026학년도 200명 규모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3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남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의대 설립을) 어느 대학에 할 지 정해주면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소지역주의를 감안한 듯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대형 컨설팅 업체에 공개모집 절차와 심사를 위탁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동부권인 순천 지역은 반발했다.

동부권인 순천대와 순천시는 전남도 공모에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순천시의회는 지난 8일 강형구 의과대학 유치 특별위원장이 삭발까지 하고 나섰다.

동부권은 중공업 산업단지가 밀집해 산업재해가 잦은 점을 고려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일각에선 도청·도교육청(무안) 및 혁신도시(나주) 등 인프라가 집중된 서부권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순천=뉴시스] 전남 순천시의회가 지난 8일 순천시청 정문에서 국립 의대 유치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강형구 의과대학 유치 특별위원장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순천시의회 제공) 2024.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순천=뉴시스] 전남 순천시의회가 지난 8일 순천시청 정문에서 국립 의대 유치를 위한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강형구 의과대학 유치 특별위원장이 삭발식을 하고 있다. (사진=순천시의회 제공) 2024.05.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의대가 단순히 지방대 '생존권 문제'였다면 최근 부산대에서 빚어진 학칙 부결 사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교육계에서는 교수사회의 입김이 강한 국립대에서는 충분히 벌어질 수 있던 일이라는 해석이 많다.

국립대는 교수·직원·학생이 총장 후보자를 선출하는 직선제가 정착돼 있어서 이사장 등의 입김이 강한 사립대보다는 교수사회의 영향력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부산대는 평교수와 학생·직원 등으로 구성된 대학평의원회를 거친 뒤 총장이 주재하고 보직교수 등으로 구성된 교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학칙을 고칠 수 있다.

전날 학칙 개정안이 부결된 제주대는 학칙 개정에 교무회의가 관여할 수 없고 대학평의원회가 마지막 심의 단계다. 강원대도 교무회의에선 개정안이 의결됐지만 마지막 대학평의원회에서 안건 상정이 보류됐다.

의대 교수들로 구성된 단체가 아닌 일반 교수회까지 학칙 개정에 어깃장을 놓고 나선 이유 중 하나로는 학내 민주화에 따른 절차적 정당성 문제가 거론된다.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거국련)는 이날 성명을 내 "정부의 (의료)개혁정책에 반대하지 않으며 일부 의사 단체의 일방적인 정원 증원 원점 재검토 요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아무리 시급해도 절차적 정당성과 의료계와 교육계의 전문성, 그리고 헌법에 명시된 대학의 자율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했다.

[부산=뉴시스] 부산대학교 고현철교수추모사업회는 지난해 8월17일 부산 금정구 대학 내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총장직선제와 대학자율화, 민주주의 등을 촉구하며 투신한 故 고현철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8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사진=부산대 제공) 2024.05.0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부산=뉴시스] 부산대학교 고현철교수추모사업회는 지난해 8월17일 부산 금정구 대학 내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총장직선제와 대학자율화, 민주주의 등을 촉구하며 투신한 故 고현철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8주기 추모식을 개최했다. (사진=부산대 제공) 2024.05.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는 총장이 학내 의사결정 구조를 거스르고 무리하게 의대 증원을 추진하는 데 대한 '견제'로 풀이된다.

교육계 일각에선 2015년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대하며 부산대에서 투신해 숨진 고(故) 고현철 교수 사건이 떠오른다는 말도 나온다. 국립대 교수사회가 학내 민주화에 대해 완고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의대 증원에 교수사회가 비협조적인 이유가 견제에만 있다고 보기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일각에선 의대 증원에 따른 대학 내부의 학사 구조조정이 다른 전공으로 번지는 걸 우려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의대 정원이 늘면 대학의 가용 가능한 재정은 한정적이라 다른 학과에 들어가는 자원을 줄여야 한다. 의대는 실습 등 교육을 위해 투입해야 할 재정이 다른 전공보다 상대적으로 많고 등록금 역시 가장 비싸다.

교육부가 국고 인센티브를 연계한 무전공 모집인원 확대를 추진하는 가운데, 일부 대학에선 인문계열 등 기초학문 분야 교수들이 학칙 개정안 의결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대학과 통폐합을 추진 중인 몇몇 국립대의 경우도 반발이 제기돼 왔다.
 
한 대학 총장은 "우리 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이 평의원회를 지금 개최하지 않고 있다"며 "통폐합 등 다른 학칙을 분리해 심의하고 의대 관련 학칙은 추후에 다시 논의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의대 증원을 두고 누구는 늘려야 한다, 누구는 늘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배경에는 대학 안팎의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고차방정식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선 무리한 증원 대신 '의대 쏠림'을 일으킨 구조적 원인부터 찾으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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