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휘어잡은 부조리, 가득 채운 아이러니 '어쩔수가없다'

기사등록 2025/09/24 05:57:00

최종수정 2025/09/26 11:35:26

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얘기해보면 어떨까. 이처럼 모든 층위에서 풍성한 이야기를 1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정밀하면서 동시에 기개와 투지가 어우러지는 연출을 한 해 몇 차례나 만날 수 있나. 고전성과 동시대성을 일시에 겨냥는 야심을 맞닥뜨리는 경험은 또 어떤가. 영상과 소리를 휘어잡고 139분을 내리 달려 감각을 충만케 하는 경지를 느껴보는 것 역시 예외적 체험일 게다. 그리고 만약에 이 모든 게 다 담긴 영화가 있다면, 우린 그런 작품을 얼마나 자주 볼 수 있을까. 아마도 그 주기는 어쩔 수 없이 박찬욱 감독이 새 영화를 내놓는 시기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박 감독이 '헤어질 결심' 이후 3년만에 내놓은 '어쩔수가없다'(9월24일 공개)는 이번에도 여지 없는 노작이자 역작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작정한 듯 맥시멀하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가 1997년에 내놓은 원작 소설 '액스'는 상대적으로 미니멀한 작품. 취업 경쟁 상대를 차례로 살해하는 한 남자의 행보와 마음에 집중한다. 반면 영화는 원작이 거의 다루지 않는 아내의 처지를 구체화하고 피해자 사정에 귀기울이며 이 이야기를 주인공 만수(이병헌) 주변으로 방사한다. 한 개의 숏도 놓치지 않고 어떤 세부사항에도 예외 없이 의미를 담아낸 미장센이, 무엇보다 충실히 정보를 퍼다 나르는 끊이지 않는 음악과 음향이 있다. 전력을 쏟아 온몸으로 표현해내겠다는 의지로 가득 찬 배우들과 좌절·공포·분노·허무 등 온갖 감정을 경유해 쉼 없이 이어지는 유머도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찰나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이 모든 요소의 오와 열을 통제한다.

'어쩔수가없다'는 박 감독이 앞서 내놓은 장편 11편과 비교할 때 가장 직설적인 풍자극이자 해학극이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만수가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잠재적 취업 경쟁자를 제거해가는 이야기가 장르의 표면을 흐른다면, 그 아래에선 불가피하다고 포장된 사회 구조의 변화가 얼마나 손쉽게 노동자를 발가벗길 수 있는지, 합리를 자처하는 자본 논리가 얼마나 간단히 개인 윤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사태의 원인인 갑에 맞서는 일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을이 자신과 똑같은 사태의 결과인 다른 을을 제거하는 데 골몰하는 그 부조리, 잃지는 않았으나 회복 불가능한 상처와 죄책감 탓에 지켜냈다고도 할 수 없는 그 아이러니는 내내 쓴웃음을 동반한다.

소리는 '어쩔수가없다'를 완성하는 요체다. 이 영화의 말과 음향과 음악은 일자리를 잃어 좌절한 노동자를 연민하고 위신을 잃고 방황하는 가부장을 조소한다. 만수가 정리해고는 살인에 가까운 행위라고 목이 터져라 외칠 때 그 소리는 공장 기계 소음에 묻혀 가닿지 못한다. 만수와 범모(이성민)가 서로 울분을 쏟아낼 때 그 소리는 유행가에 뒤엉켜 알아들을 수 없다. 시조(차승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이는 없고, 공허를 얘기하던 선출(박희순)의 입은 막혀버린다.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산울림의 '그래 걷자', 조승구의 '구멍난 가슴', 배따라기의 '불 좀 켜주세요'는 탄식이자 야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환란이 지나간 뒤 끝내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고 어떤 말을 해도 소용 없을 때, 만수는 입을 닫고 귀를 막는다.

남성 만수의 영화인 '어쩔수가없다'는 여성 서래의 영화인 '헤어질 결심'의 대구다. '헤어질 결심'은 긴 시간 온갖 방식으로 타자화 돼 평가절하 당해온 여성을 구원하는 이야기였고, 이를 위해 팜파탈이라는 오명과 함께 사라질 뻔한 어느 여성을 강인하고 담대하며 위엄 있는 인간으로 바로 세웠다. '어쩔수가없다'는 오랜 세월 동일화 돼 과대평가 된 남성을 나락에 빠뜨리는 이야기이고, 이를 위해 가부장이라는 권위와 함께 추어올려질 수도 있는 한 남성을 나약하고 어리석으며 쪼잔한 인간으로 끌어내린다. 다시 말해 만수는 남자·남편·아버지로서 집을 지켜냈다고 착각하나 만수의 망상을 실현해준 건 그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미리(손예진)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관객은 만수에게 감정 이입 하기보다 그의 행각에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쩔수가없다'에서도 가장 최신의 기술을 극 안으로 적극 껴안고 들어와 실감을 끌어올리고 서사를 도약시킨다. '헤어질 결심'은 스마트폰의 통역·녹음·검색·위치추적 기술과 사랑의 속성을 엮어낸 적이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급격히 휘몰아치는 인공지능(AI) 기술의 성장으로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이 서사의 두 축인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강화한다. 만수가 내 자리 하나를 되찾기 위해 수 년 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난장판을 벌일 때 AI는 조용히 노동력 대부분을 대체하지 않았나. 만수가 재취업에 성공했을 땐 머지 않아 그렇게 어렵게 쟁취한 그 자리를 내줘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 만수는 죽여서 없앨 수 있는 경쟁자조차 없다.

'어쩔수가없다'의 맥시멀리즘은 그 방향에 충실히 복무하는 배우들의 연기로 충만하다. 새삼스럽지만 이성민과 박희순과 염혜란은 어떤 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 어떤 연기를 주문 받더라도 능히 해내는 연기자라는 걸 또 한 번 보여준다. 손예진과 차승원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화려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들인데, 수수하게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도 남다른 감각이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고 이병헌이 있다. 희극과 비극 그 중간 어디가에 그어진 선을 들락날락하는 듯한 그의 연기는 세상의 어떤 일이든,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다 이해하는 것만 같다. 이제 이병헌의 연기는 어느 경지를 넘어가 있어서 흔히 말하는 연기력에 관해 얘기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 얘기를 빼놓을 순 없다. '어쩔수가없다'는 어쩔 수 없이 영화에 관한 영화로도 읽힌다. 해고당한 종이 전문가 만수가 종이업계를 고집하며 다시 그 업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은 더 이상 관객이 오지 않는 극장이라도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어보려는 영화인을 비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종이가 뭐길래 그토록 종이를 꿰찬 전문가 만수·범모·시조·선출은 박 감독의 말처럼 영화라는 2시간짜리 오락에 자기 인생을 통째로 바친 영화하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극 후반부 AI 얘기까지 나오면 영화 제작의 거의 모든 부문을 위협 중인 AI 시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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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휘어잡은 부조리, 가득 채운 아이러니 '어쩔수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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