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열병식] 전승절 왜 9월 3일?…국민당과 장제스 언급 않는 중국

기사등록 2025/09/03 16:23:09

최종수정 2025/09/03 18:32:24

일본군 항복 받았던 수 차례 의식 모두 국민당 정부 수행

‘9월 3일 전승절’은 미주리함 항복 서명식 다음날 임시공휴일부터 시작

전승과 전승절에 대만과 장제스 역할 전혀 언급 없어

[서울=뉴시스] 중국이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을 맞아 3일 베이징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한 가운데, 대만 라이칭더 총통이 같은 날 평화의 가치를 강조하며 중국의 무력 중심 행사에 우회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사진은 라이 총통이 정부 부처 수장과 함께 타이베이의 ‘국민혁명충렬사’를 방문해 순국선열을 참배하는 모습. (출처: 대만 총통부) 2025.09.03.
[서울=뉴시스] 중국이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을 맞아 3일 베이징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개최한 가운데, 대만 라이칭더 총통이 같은 날 평화의 가치를 강조하며 중국의 무력 중심 행사에 우회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사진은 라이 총통이 정부 부처 수장과 함께 타이베이의 ‘국민혁명충렬사’를 방문해 순국선열을 참배하는 모습. (출처: 대만 총통부) 2025.09.03.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중국은 2014년 2월 27일 제1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제7차 회의에서 매년 9월 3일을 ‘중국 인민 항일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기념일’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왕이 ‘전쟁 종식에 관한 칙어’를 발표해 패전을 공식화했지만 중국은 이를 승전 기념일로 지정하지 않았다. 

항복 선언 이후 일본이 정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것은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한 미주리함 선상에서였다. 미주리함 서명식에 중화민국도 쉬융창 군사위원회 군령부장이 참가했다.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당시 미주리함 서명 이튿날인 3일 목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하고 4일과 5일 사흘을 연휴로 지정했다.

당시에는 통신이 발달되지 않아 미주리함의 항복 선언문 서명이 하루 늦게 전해져 하루 늦게 축하 행사를 벌였다는 해석이 있다고 관영 차이나데일리 등은 2일 보도했다.

‘정치적인 함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차이나데일리 등은 전했다.

히로히토 일왕이 포츠담 선언 수락을 선언하는 동시에 대동아전쟁 종전에 관한 칙어를 발표했으나 항복 문서가 아니라 ‘전쟁 종전에 관한 칙어’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전쟁 침략과 학살 범죄에 대해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8월 15일을 승전일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8월 15일을 승전 기념일로 규정했다면 일본은 이미 그날로 적대 행위를 즉시 중단했다고 주장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주리함의 서명 외에도 일본군과 일본의 패전을 확인하는 절차를 여러 차례 걸쳤다.

미주리함 항복 문서 서명식 1주일 후인 9일 장쑤성 난징의 중앙군관학교 강당에서 별도의 항복식을 가졌다.

그해 10월 10일에는 일본제국군 47개 사단이 베이징 자금성에서 중국 군관계자와 연합군 대표에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의식을 가졌다.

장제스 중화민국 정부는 미주리함과 난징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기 전 ‘전장(戰場)에서의 항복’을 받은 절차도 있었다.

그해 8월 21∼23일 (盧溝橋)에서 후난성 즈장둥쭈 자치현 치리차오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처음 받는 ‘수항식(受降式)’을 가졌다.

중국에서는 즈장에 유일하게 ‘항일전쟁 승리기념관’이 있다. 항복 의식이 열렸던 곳에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와 장제스의 사진이 그대로 걸려 있다. 당시 일본의 항복은 국민당과 장제스가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국민당과 장제스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항일에서의 역할을 재평가하는 것이자 항일에는 국민당과 홍군(후의 인민해방군)의 차이가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중국이 올해 2015년에 이어 두 번째 대규모 열병식을 가지면서 항일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식을 가지면서 당시 국민당 정부나 장제스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만 중국 담당 조직인 대륙위원회 선유중 부주임(차관급)은 1일 “중공은 항일전쟁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으며, 전쟁을 이용해 세력 확장에만 몰두했다”며 “이번 열병식은 역사적·정치적·법적으로 모두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화민국(대만)이 일본에 맞서 싸우던 시기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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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열병식] 전승절 왜 9월 3일?…국민당과 장제스 언급 않는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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