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수사도 평가도 없이 '그랬다고 적었다'…"그 무뚝뚝함이 좋았죠" [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6/08/29 09:00:00

최종수정 2026/08/29 12:42:12

구글에서 선호하는 매체로 추가

7년만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생활인·창작자·사회인 김애란의 얼굴

기억 잃어가는 아버지 가족사 처음 꺼내…"소설이라는 장치 없이 대면"

"인간 문장의 힘은 '차마 못 쓴 문장'에도…누군가 대변한다 생각 안해"

[서울=뉴시스] 김애란 작가.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승재) 2026.08.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애란 작가.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승재) 2026.08.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기용 기자 = 소설 밖의 김애란(46)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말 앞에서 망설일까.

오랜 시간 소설로 독자에게 '안녕'을 물었던 김애란 작가가 이번에는 허구라는 가림막을 걷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7년 만의 산문집 '그랬다고 적었다'(문학동네)를 통해서다.

가족을 바라보는 생활인, 쓰는 일에 고뇌하는 창작자, 시대를 응시하는 사회인의 얼굴까지. 글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김애란의 여러 얼굴이 겹쳐진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애란은 오랜만에 펴낸 산문집에 대해 "소설 바깥에서 독자분들을 조금 더 가깝게 만나는 기분이 든다"며 "마음 먹고 쓰기보다 시간과 삶이 쌓여서 얻게 된 생각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그랬다고 적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6.08.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그랬다고 적었다' (사진=문학동네 제공) 2026.08.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없는 재료 있는 척하지 않으려 했다"…소설 밖 김애란

김애란은 소설과 산문의 차이를 요리와 주방에 비유했다.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출간 당시 밝혔듯 "소설은 요리 같고, 산문은 주방을 공개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산문을 대하는 원칙은 같다.

"소설은 가공이 약속된 영역이기에 상상과 과장, 왜곡이 허용되지만, 산문은 주방을 공개하는 일인 만큼 없는 재료를 있는 척하지 않으려 했어요. 주방만의 도덕을 지키며 정직하고 진솔하게 쓰려 했습니다."

허구라는 가림막 없이 독자를 마주하는 것은 두렵지 않았을까.

"시간의 힘을 믿었죠. 초면에는 경계나 암묵적으로 허용한 거리가 있지만, 나름 20년 넘게 활동하면서 여러 방식으로 (독자들과) 다양하게 각자의 타임라인에서 만났다고 생각해요. 친구 사이에도 속 이야기를 할 때 신뢰가 바탕이듯, 함께 보낸 시간에 독자들을 향한 신뢰가 있었습니다."

책 제목에도 자신을 과장하거나 섣불리 규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묻어난다.

김애란은 '그랬다고 적었다'라는 제목에 대해 "적었다는 말 안에 수사나 평가가 들어가지 않은 무뚝뚝함이 좋았다"며 "글 쓰는 수행으로서의 행위를 드러내면서도 내 직업을 너무 높이거나 낮추지 않는 가치중립적인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책은 '사람의 얼굴', '이야기의 얼굴', '일상의 얼굴' 등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서 시작해 소설가로서의 삶을 거쳐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일상으로 시선을 넓힌다.

기억과 말 잃어가는 아버지…처음 꺼낸 가족의 얼굴

이번 산문집에서 가장 사적인 얼굴은 가족을 이야기할 때 드러난다. 특히 기억과 말을 점점 잃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을 꺼내놓는다.

김애란은 "초기작에 가족 이야기를 많이 썼지만, 소설이란 안전한 장치로 허구와 상상, 유머의 힘을 빌어 제 나름의 방식으로 가족을 만났다"면서도 "산문이기에 직접적이고 그러한 장치 없이 (가족을) 대면했다"고 말했다.

그가 아버지와 관련된 가족사를 들려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산문집에 실린 글 대부분이 여러 매체를 통해 먼저 소개된 것과 달리, 작가가 부친을 인터뷰한 '없는 자리'는 이번 산문집의 유일한 미발표작이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에게서 미처 알지 못했던 얼굴도 발견했다. 오랫동안 이발일을 해온 아버지에게 일터는 단순히 생계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의 일부였다.

"나이가 들고, 때가 되면서 이제는 직접적인 육성으로 (가족을) 직면할 수 있게 됐어요. 직업과 무관하게 한 개인으로서 부모님의 역사를 남겨놓고 싶었습니다. 제가 소설가라서 다행인 거죠."

[서울=뉴시스] 김애란 작가.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승재) 2026.08.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애란 작가.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승재) 2026.08.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차마 못 쓴 문장도 있다"…AI 시대 인간이 쓰는 이유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위안을 얻기 위해 찾은게 AI였다. 책에는 AI와 대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망설임 없이 자신의 고민에 공감해주는 AI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AI의 관습적인 말투에는 이내 마음이 식었다. 고민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AI도 망설이고 주저하지만, 이건 수학적 결과로서의 지연이죠. 인간의 망설임이나 지연은 윤리적인 의지가 들어간 것이고요."

그렇다면 매끄러운 문장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AI 시대에 문학과 인간의 문장이 지닌 고유한 힘은 뭘까.

"결과물로 드러난 문장으로만 비교한다면 AI의 문장도 뛰어나겠죠. 하지만 인간이 쓰는 문장의 진짜 힘은 '쓰여지지 않은 문장', '차마 못 쓴 문장', '배려하고 안 쓴 문장' 같은 외부의 여백에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본질로는 '비합리성'과 '비효율'을 꼽았다.

김애란은 "자기 보존 욕구를 역행하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거나 희생하고 배려하는 마음은 비합리적"이라며 "과거 수많은 비효율적으로 쏟아부은 노력이 축적돼 오늘날 지적 유산으로 발전했듯 가볍거나 무겁고, 즐겁거나 진지한 다양한 얼굴을 가진 문학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애란은 소리꾼 이자람의 공연을 보며 이야기가 절정부에 이르기까지 쌓이는 플롯과 맥락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고 했다.

짧고 편한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더 편하고 짧은 콘텐츠를 찾는 것은 타락해서가 아니라 피곤해서"라며 천천히 책에 집중할 수 있는 노동·교육 환경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서울=뉴시스] 김애란 작가.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승재) 2026.08.29.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김애란 작가. (사진=문학동네 제공 ⓒ이승재) 2026.08.2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누군가 대변하려 쓴 적 없어"…동시대를 기록하는 법

김애란의 시선은 자신의 삶에서 동시대로도 향한다. 책 후반부에는 세월호 참사와 코로나19 등 한국 사회가 겪은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 등장한다. 그러나 거대한 사건 앞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 서려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대변하거나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 적 없어요. 보고 느낀 경험을 문학의 방식으로 하려고 할 뿐이죠."

올해 등단 25년 차. 오랜 시간 글을 쓰며 수많은 인물의 얼굴을 그려온 그에게 이번 산문집을 통해 독자에게 어떤 얼굴로 남고 싶은지를 물었다. 김애란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자이크."

"휴대전화 사진첩을 연도별로 설정하면 작게 쪼개진 조각처럼 보이잖아요. 저도 하나의 얼굴이라기보다 사진첩의 모자이크…다만 멀리서 봤을 때 하나의 형체처럼 보이는…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네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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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수사도 평가도 없이 '그랬다고 적었다'…"그 무뚝뚝함이 좋았죠" [문화人터뷰]

기사등록 2026/08/29 09:00:00 최초수정 2026/08/29 12: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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