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아탄을 심문하다' 저자 그레이엄 버넷 美 프린스턴大 교수의 경고
"진짜 문제는 기술 뒤 경제모델…인간의 시간과 주의력 착취해 이윤 극대화"
"새로운 통제 없다면 결국 사람의 존엄성과 사회의 지속 가능성 위협할 것"

17일 제47차 글로벌 프라이버시 총회(GPA) 서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레이엄 버넷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라운드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개인정보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송혜리 기자 =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것은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시간과 주의력을 흡수하는 시대에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과 존엄의 기반을 지키는 일입니다."
17일 제47차 글로벌 프라이버시 총회(GPA) 서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레이엄 버넷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설명이다. GPA 총회는 개인정보 보호와 프라이버시의 미래를 논의하는 국제회의로 지난 16일 서울에서 막을 올렸다.
그레이엄 버넷 교수는 과학사와 지식사를 가르치는 세계적 석학이자 저명한 작가이자, 비평가다. 버넷 교수는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고 사회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깊이 탐구해 왔다. 대표 저서인 '레비아탄을 심문하다(Trying Leviathan)'는 학계는 물론 대중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를 통해 뉴욕시 도서상과 도시사 부문 허멀린상을 등 저명한 상을 수상했다.
버넷 교수는 올해 4월 뉴요커에 기고한 칼럼 '인문학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남을 수 있을까?(Will the Humanities Survive Artificial Intelligence?)'를 통해 다시 한 번 학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이 글에서 그는 AI의 급속한 확산이 고등교육, 특히 인문학에 미치는 구조적 충격을 분석했다. 아울러 일방적으로 AI를 금지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무작정 관망하기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AI는 인간의 '주의력'을 착취한다"
버넷 교수는 "AI는 지금 세상을 엄청난 속도로 바꾸고 있다"면서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집중력'이라는 인간 능력에 대해 AI가 갖는 함의는 매우 중대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AI는 인간보다 훨씬 더 똑똑한 체계로, 바둑이나 체스처럼 인간의 두뇌와 감각이 중심이던 영역에서도 이미 우리를 능가했다"면서 "지금은 AI 기술이 사람들이 하루 종일 스마트폰과 화면을 들여다보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것은 단순한 기술 활용이 아니라 인간의 시간과 주의력을 구조적으로 흡수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버넷 교수는 이러한 구조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떤 10세 아동이 하루 9시간씩 화면에 몰두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앞으로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넷 교수는 "기술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진짜 문제는 기술을 뒷받침하는 경제 모델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경제 모델, 즉 사람의 시간과 주의력을 착취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구조에 있다"면서 "이런 구조가 아무런 규제나 보호, 민주적인 거버넌스 없이 계속된다면 결국 사람의 존엄성과 사회의 지속가능성 자체가 위협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7일 제47차 글로벌 프라이버시 총회(GPA) 서울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레이엄 버넷 미국 프린스턴대학 교수가 라운드 인터뷰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개인정보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술은 중립적…문제는 그것을 활용한 착취 시스템
버넷 교수는 "증기기관이나 기계 자체가 '나쁜 것'이었던 것은 아니"라면서 "문제는 그 기술이 노동을 착취하는 시스템, 예컨대 공장제도나 장시간 저임금 노동 구조 속에서 활용됐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바로 그런 구조적 착취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버넌스와 규칙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노동자들이 '나는 좀 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며 "개인의 목소리만으로는 변화가 불가능했고, 결국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힘을 모으고 연대함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는 다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착취에 맞서기 위해 다시금 힘을 모을 때"라고 설명했다.
버넷 교수는 프라이버시는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GPA는 데이터를 보호하고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집단"이라며 "이 모임이 맡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사람 자체를 보호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행사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에게 전달한 이야기들도 이와 관련돼 있다"면서 "규정과 정책을 만들면서 단순한 통제를 넘어,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꼭 한번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렸다"고 덧붙였다. 버넷 교수는 "그런 보호된 공간이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안전하게 발전하고 번영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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