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해보라"…투표소 앞 '중국인 색출'에 혐오 우려

기사등록 2025/06/01 07:00:00

투표소 앞 "중국인 아니냐" 추궁하고 촬영까지

전문가 "혐오 정서 자극, 사회 갈등 위험 커"

[부천=뉴시스] 정일형 기자 = 29일 오후 4시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사전투표소 안에서 불법 촬영한 영상과 자신의 SNS계정. (사진=국민의힘 부천을 제공)
[부천=뉴시스] 정일형 기자 = 29일 오후 4시께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춘의동 사전투표소 안에서 불법 촬영한 영상과 자신의 SNS계정. (사진=국민의힘 부천을 제공)

[서울=뉴시스]최은수 기자, 김지윤 인턴기자 = 제21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기간 일부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중국인 색출'을 시도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혐오 정서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부정선거 감시를 내세운 자발적 감시자들의 행위가 인종차별적 성격을 띠며 외국인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전투표 둘째날인 지난달 30일 낮 12시께 서울 광진구 자양2동 주민센터. 검은색 추리닝 차림의 30대 남성이 투표소 출입구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중국인 같은 사람들이 오는지 궁금해서 나왔다"며 "부정선거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유사한 상황은 다른 지역에서도 나타났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투표소에선 부정선거 감시를 주장하는 이들이 일부 유권자에게 말을 걸며 한국어 능력을 확인하려는 시도를 해 중국인 색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부정선거부패방지대'를 이끌어온 황교안 후보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중국 동포 거주 비율이 높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과 광진구 화양동 사전투표소를 '부정선거 의심 사례'로 지목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중국인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사실관계가 불확실한 영상과 게시물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SNS 틱톡의 중국판 앱인 '더우인'에서 투표용지를 손에 든 채 촬영한 장면, 투표소 내부로 보이는 장소에서 촬영된 영상 등이 중국인 투표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보수단체 자유대학이 5월30일 게시한 ‘중국인 투표 의혹’ 이미지. 중국 SNS 더우인에 게시된 투표용지 촬영 영상과 관련 내용을 묶어 ‘외국인의 불법 투표 의심 사례’로 규정하고 선관위의 해명을 요구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보수단체 자유대학이 5월30일 게시한 ‘중국인 투표 의혹’ 이미지. 중국 SNS 더우인에 게시된 투표용지 촬영 영상과 관련 내용을 묶어 ‘외국인의 불법 투표 의심 사례’로 규정하고 선관위의 해명을 요구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한 X(옛 트위터) 이용자는 투표용지 사진과 더우인 계정 화면을 함께 게시하며 “중국인으로 의심되는 자들이 투표지를 촬영해 올리고 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올리는 걸 보면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을 펼쳤다. 또 다른 이용자는 "중국인이 투표소를 라이브 방송하고 있다"며 "왜 자꾸 사전투표를 하라고 하냐"며 강한 불신을 표했다.

이 같은 게시물에는 "사전투표장을 감시하러 가자" "중국인을 색출하자"는 식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일부 이용자들은 유권자에게 말을 걸어 '한국어 능력을 시험하거나 외모 등을 근거로 중국인 여부를 추정해 촬영하자'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특정 투표소에서 계수 인원 차이를 근거로 삼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해 온 보수 단체니티 '자유대학' 측은 서울 광진구 자양1동 사전투표소에서 오후 시간대 공무원이 집계한 투표자 수와 참관인이 직접 계수한 인원 간 차이가 발생했다며 "중국인을 확인하려다 제지를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SNS에 게시했다.

이 같은 주장들은 명확한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채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며 선거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 중 일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에서 귀화한 한국 국적의 30대 남성 A씨가 경기 부천시 춘의동 사전투표소 내부에서 자신의 투표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뒤 '틱톡'에 게시한 사례가 있었다.

해당 영상은 온라인상에서 '중국인이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혹과 함께 빠르게 확산됐지만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합법적 유권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부천 원미경찰서는 지난달 30일 공직선거법상 투표소 내 촬영 금지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A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

현행법상 외국 국적자에게는 대통령선거 투표권이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 투표권은 오직 대한민국 국적자에게만 주어지며 외국인이 투표에 참여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위가 개인적 호기심이나 감시를 넘어 정치적 의도와 결합해 외국인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중국에 대한 혐오 정서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미중 갈등과 사드 배치 이후 누적된 외교 갈등,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결합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윤태 교수는 "일부 정치인과 유튜브 채널이 혐오 감정을 자극해 정치적 이득이나 상업적 수익을 노리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은 사회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고 외국인 혐오라는 위험한 흐름을 부추길 수 있다. 언론과 시민사회가 허위정보와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바로잡고, 시민의 미디어 해석 능력을 키우는 정치 교육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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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해보라"…투표소 앞 '중국인 색출'에 혐오 우려

기사등록 2025/06/01 07:00:00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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