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제연구소, 전남 독립운동가 37명 서훈 신청
노조 만들려다 처벌…항일 청년 80여 년만 서훈 길
"北관련 이력만으로 배제…서훈 심사 기준 바꿔야"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지난 13일 권시용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발간한 1945년 작성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약명부)' 번역본을 바라보고 있다. 2025.08.14. creat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8/14/NISI20250814_0001918517_web.jpg?rnd=20250814114145)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지난 13일 권시용 민족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발간한 1945년 작성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약명부)' 번역본을 바라보고 있다.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광복 8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가 전남 지역에서 발굴한 독립운동가 37명이 지난 6월 말 국가보훈부에 포상 신청됐다. 이번 작업은 일제가 1945년 패망 직전 작성한 '조선인요시찰인약명부(약명부)' 등 자료를 근거로, 친일 행적이 없고 해방 후 북한 관련 전력이 없는 인물 중 처벌받은 기록이 있는 이들을 선별한 결과다.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난 권시용 선임연구원은 이번 조사·연구를 총괄했다. 그는 특히 '적색 노동조합 준비위원회 사건'을 인상 깊게 꼽았다. 광주 학생 항일운동의 영향을 받은 전남 보성·함평·강진·광주 출신 청년 여섯 명이 학회를 조직해 사회주의 사상을 공부하고, 서울 각지 자동차수리학교와 철공소 등에서 동지를 모아 노동조합 결성을 준비하다 1939년 일제에 체포·처벌된 사건이다.
당시 청년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으로 현재 대학생에 해당하는 젊은 나이였다. 강개동·강점수·김한동·염규석·조형식·진상국 등 여섯 명이 함께 활동했으나 현재까지 포상을 받은 이는 단 한 명뿐이다. 권 연구원은 "같은 활동을 했는데도 한 사람만 포상을 받은 것은 후손의 신청 여부나 관심 차이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번에 네 명을 신청했고, 한 명은 추가 조사 후 다음 기회에 올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는 연구자 10명이 참여해 6개월간 약명부와 신문, 판결문, 공문서 등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1945년 3~4월 무렵 작성된 약명부는 일제 고등경찰이 요주 조선인에 대한 주소·직업·항일행적을 도별로 기록해 둔 사실상 '일제판 블랙리스트'다. 해방 직전까지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권 연구원은 "1930년대 후반 전향 후 고향에서 농사만 지은 경우도 있고, 반대로 당국에 협력을 과시하는 활동을 한 기록도 있어 이를 통해 흠결 여부를 판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친일 행적 배제' 원칙을 철저히 적용했다. 전남 관할 약명부 인물 206명 중 이미 이미 서훈된 인물과 친일파·부역자 등을 걸러낸 뒤, 일제의 처벌 기록이 있는 59명을 1차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그중 친일, 해방 후 북한 활동 전력이 없는 37명만이 신청 명단에 올랐다. 권 연구원은 "흠결이 있는 인물을 제외하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권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13일 '적색 노동조합 준비위원회 사건' 관련 인물들의 생년·출신지 등을 정리한 수기 메모를 공개하고 있다. 2025.08.14. create@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5/08/14/NISI20250814_0001918812_web.jpg?rnd=20250814152928)
[서울=뉴시스] 조성하 기자 = 권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이 13일 '적색 노동조합 준비위원회 사건' 관련 인물들의 생년·출신지 등을 정리한 수기 메모를 공개하고 있다.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현행 서훈 심사 기준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방 뒤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서훈이 불허되는 사례가 많아, 1945년 8월 15일 이전 행적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학계 일부 의견에 권 연구원은 공감했다. 그는 잠시 말을 고른 뒤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운 인물들이 해방 이후 행적이 걸림돌이 돼 공로를 평가받지 못하는 건 안타깝다"며 "별도의 독립훈장을 제정하자는 논의에 공감한다"고 했다.
조선시대 서원 연구자였던 권 연구원은 2005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활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옛 신문과 판결문, 공문서를 뒤지며 항일운동가의 삶을 퍼즐처럼 맞추는 과정이 추리소설만큼 흥미롭다"며 "이번 작업이 후배 연구자들이 독립운동사에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구소는 전남 지역 미조사 인물 10여명을 추가 조사한 뒤 전북 등 다른 도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헌법이 규정한 독립운동 계승 의무를 강조하며 서훈자 확대와 독립운동사 대중화 체계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임 소장은 "우리 헌법은 독립운동 계승을 명시하고 있기에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도 독립정신 선양은 어느 정부에게도 의무"라며 "현재 서훈자는 약 1만8000명에 불과한데 1895년 을미의병부터 1945년까지 50년 독립운동 기간을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생존 독립운동가가 단 5명뿐인 지금, '독립운동가 부재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국가보훈부는 민간 기관과 지속적 협력을 통해 꾸준히 독립운동가 발굴하고, 독립운동사를 역사문화콘텐츠로 활용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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