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발이아버지부터 야동순재까지…"연기 완성 없다"던 대배우

기사등록 2025/11/25 07:07:55

최종수정 2025/11/25 08:11:30

배우 이순재 25일 오전 별세 향년 91

1957년 데뷔 약 70년 간 배우로 활동

"평생 했는데도 아직 안되고 모자라"

드라마 310편, 영화 130편, 연극 60편

"배우는 항상 새로운 작업에 도전해"

'사랑이 뭐길래' 대발이 아버지 큰사랑

'허준' 유의태 "못난놈" 최고 유행어로

후배 향한 쓴소리 연예계 존경 받아와

계속된 도전 야동순재 별명에도 만족

"닥치는대로 내 할 일을 해나가겠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평생을 헸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습니다…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겁니다.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다, 이거예요."

배우 이순재(91)는 지난해 5월 열린 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특별공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그 말 그대로 연기 완성을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은 배우였다. 그는 최고의 스타는 아니었다. 다만 약 70년 간 숱한 스타들이 뜨고 질 때 언제고 살아남아 연기했고, 그렇게 세대를 뛰어 넘어 최고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이순재는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을 향행 끊임 없이 도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게 그가 도전한 TV 드라마만 약 310편, 영화가 130여편, 연극은 60여편이었다. 이순재는 "배우라는 것은 항상 새로운 작업에 대한 도전"이라며 "어떻게 연구 안 하고 공부 안 하고 창조가 되겠느냐"고 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6년 대한방송(HLKZ-TV)에서 정식 데뷔해 연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활동한 건 1960년대부터다. 연기를 처음 한 건 고등학교 때 연극 '햄릿'을 하면서부터인 거로 알려졌다. 서울대 철학과에 다닐 때도 연극반을 만들어 정기 공연을 했을 정도로 일찍이 배우를 꿈꿨다.

1960년 신성일·신영균·남궁원 등과 함께 영화계에서 활동했고, 1976년엔 영화 '집념'으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남자배우상을 받았을 정도로 영화로 연기력을 인정 받았으나 이순재라는 이름을 대중에 널리 알린 건 역시 TV 드라마였다. 그는 TBC 전속 배우로 1960년대 중반부터 1980년까지 100편이 넘는 TBC 드라마에 출연했다. 1980년 언론 통·폐합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는 KBS 드라마에 주로 나오다가 이후 모든 방송사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이순재의 폭넓은 작품 목록을 보면 그가 주·조연을 가리지 않았고, 역할을 따지지도 않고 좋은 작품이라면 어김 없이 출연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이순재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 배우로 만들어준 작품은 1991년 MBC TV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였다. 최고 시청률 64%를 넘긴 이 작품에서 이순재는 일명 '대발이 아버지' 이병호를 맡아 꼬장꼬장한 성격의 가부장을 연기해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에서 자주 나온 "대발아"라는 대사는 전국민적인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이순재의 대표작이 '사랑이 뭐길래'였다면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그의 새로운 대표작은 1999년부터 2000년 방송한 MBC TV 월화드라마 '허준'이었다. '허준'은 시청률 64.8%를 기록해 역대 사극 시청률 1위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순재는 이 작품에서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연기해 큰 지지를 받았다. 이 작품에서 유의태가 아들 유도지에게 하는 대사인 "못난놈" 역시 '대발아'처럼 전 세대가 따라하는 유행어가 됐다.

이순재는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쉬지 않고 배우 활동을 하면서도 정치에 도전하기도 했다. 1981년 민주정의당이 창당할 때 정계에 입문했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 서울중랑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14대 총선에선 민주자유당 후보로 다시 한 번 서울중랑갑에 나와 당선됐다. 이순재는 이때 잠시 연기를 중단하고 정치에 매진했다. 15·16대 대통령 선거 땐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고, 17대 대통령 선거에선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18대 대통령 선거 땐 박근혜 후보 선대위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뒤엔 정치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TV 드라마에서 맡아온 근엄한 캐릭터에 정치 활동 등 영향으로 진지하고 근엄한 인상을 가진 배우였던 이순재는 2006년 MBC TV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나와 그간 이미지를 완전히 깨부수는 연기를 보여줬다. 한방병원 원장이지만 같은 한의사인 며느리에게 실력과 명성 모든 면에서 밀려난 시아버지, 고집불통에 아내를 구박하는 게 일상인 밉상 남편, 야동을 보다가 가족에게 발각되는 철없는 남자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다시 한 번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동안 '야동 순재'가 그의 별명처럼 따라다녔는데, 이순재는 오히려 그 별명을 자랑스러워 했다. 그는 수차례 '거침없이 하이킥'을 "걸작"이라고 언급했다.

이순재는 TV 드라마로 더할 나위 없는 경력을 쌓아가던 중에도 꾸준히 연극을 올리며 자신의 연기 고향인 무대로 되돌아 갔다. 연극을 향한 그의 사랑은 배우 생활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을 때 오히려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이순재는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매년 한 작품 이상을 선보였다. '돈키호테' '세일즈맨의 죽음' '리어왕' 등 명작을 다시 연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수상회'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극화한 요즘 작품에도 나왔다. 2023년 '리어왕'을 하고 나서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연기를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순재는 이렇다 할 스캔들 하나 없는 착실하고 모범적인 배우 생활과 연기를 향한 진지한 태도로 후배 배우 뿐만 아니라 연예계 전체에서 늘 존경 받았다. 또 연기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는 후배들을 향해 쓴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2013년 연기대상에선 "스타는 두 가지다. 광고만 하면서 돈 많이 받는 모델 스타와 인기도 높고 연기도 알차게 하는 액팅 스타. 여러분 모두 액팅 스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2018년 연예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있었을 땐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깜짝 놀란다. 설마설마했는데 사실화됐다. 관객들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2019년 버닝썬 게이트가 터졌을 땐 "내가 연예인인데 자유분방하면 어떠냐 그게 예술이야라고 주접떠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순재는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서 자기만의 연기 철학, 삶의 철학을 보여줘 또 한 번 크게 주목 받기도 했다. 특히 80세 넘은 나이에도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는 건 물론 끊임 없이 공부하고 배우려는 태도로 '참어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는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나 받으려고 주저앉아 버리면 늙어버리는 거다.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다"고 했다. 또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언제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건 잊어버리고 닥치면 닥치는 대로, 당장 나는 내 할 일이 있으니까. 그거 하다 보면 이제 끝내야 될 때가 올 거 아니냐 이거다. 그럼 그때 끝내면 되는 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순재는 자신의 말처럼 2024년 KBS 2TV 수목드라마 '개소리'로 그 해 말 KBS 연기대상에서 최고령 대상을 받았다.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드라마였다. 이순재는 25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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