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평생 신세 많이 졌습니다."
지난해 말 KBS 연기대상에서 '개소리'로 대상을 받은 이순재(91)는 감격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그의 마지막 무대였다. 더 이상 시청자를 만날 수 없을 거란 걸 그도 직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온갖 감정이 함축된 저 짧은 말을 건넨 것으로 보인다.
이순재는 말을 잘하는 배우였다. 다변가(多辯家)는 아니었지만 일단 하게 되면 자기 생각을 쏟아내는 데 거침 없었다. 그리고 틀린 말을 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존경 받았다. 2013년 SBS 연기대상에서 후배들을 향해 "모델 배우가 아니라 액팅 배우가 돼라"고 한 게 대표적이다. 그가 말하는 '모델 배우'는 광고로 돈만 버는 배우를 말하고, '액팅 배우'는 인기도 좋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였다.
이순재는 특히 연기에 관한 말을 자주 했다. 2024년 5월 60회 백상예술대상에서 특별무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꾸민 그는 "평생을 헸는데도 아직도 안 되고 모자라는 데가 있다. 연기에 완성이 없다는 얘기가 바로 그겁니다. 잘할 순 있어도 완성은 아니다, 이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기를 아주 쉽게 생각했던 배우들 수백명이 사라졌다"고 하기도 했다. 이순재는 "예술이란 영원한 미완성이다. 그래서 나는 완성을 향해 끊임 없이 도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순재는 죽기 직전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2018년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그는 "대사를 외울 수 있을 때까지는 연기하고 싶다, 매 작품이 유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한다"고 했다. 2023년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이순재는 그때도 "배우는 연기할 때 생명력이 생긴다. 그땐 모든 걸 다 초월한다. 그래서 내 소망은 무대에서 쓰러지는 거다. 그게 가장 행복한 거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바람처럼 무대에서 쓰러지진 못했다. 그래도 작년까지 왕성히 연기했다. 자기 소망을 이룬 셈이다.
이순재는 업계 발전을 위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2010년 '지붕뚫고 하이킥'을 할 땐 생방송에 가까운 제작 과정을 지적하며 "젊은 친구들이 생사를 걸고 한 작품이다. 이제는 완전한 사전제작제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듬해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쪽대본 논란에 휩싸였을 땐 "어느 나라가 드라마를 이렇게 만드나. 외주제작을 의뢰할 때 적어도 열흘 전에 대본을 넘겨 검사할 시간을 달라는 계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렇다 할 스캔들 하나 없이 배우 생활을 한 이순재는 후배 배우들이 더 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며 고언하기도 했다. 2018년 연예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 있었을 땐 "가해자로 지목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라 깜짝 놀란다. 설마 했는데 사실화 됐다. 관객이나 국민들한테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했다. 2019년 버닝썬 사건이 터졌을 땐 "내가 연예인인데 자유분방하면 어떠냐 그게 예술이야, 라고 주접 떠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부 연예인들이 음주운전 등 각종 물의를 일으켰을 때는 "연예인은 공인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공인적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있고,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부터 법규를 잘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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