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라 불러"…여성소방관 생전 15개월, 24번 회식지옥

기사등록 2026/06/24 17:37:14

최종수정 2026/06/24 19:04:59

새벽 2시까지 이어진 회식, 남성상급자 옆자리 배석 강요

폭탄주 강요에 주말엔 소방서장 장인상 빈소 상차림까지

[광주=뉴시스] 고(故) 광주 여성 소방관 A씨와 약혼자가 나눈 메신저 대화(왼쪽)·해외여행 전 A씨가 친구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사진=유족 측 제공) 2026.06.15.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고(故) 광주 여성 소방관 A씨와 약혼자가 나눈 메신저 대화(왼쪽)·해외여행 전 A씨가 친구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사진=유족 측 제공) 2026.06.15.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변재훈 이현행 기자 =
"서장과 과장 사이에 앉아라"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라"


회식 때마다 폭탄주 원샷을 마셔야 했고 술자리에서는 남성 상사 사이에 앉았다. 주말에는 사적 심부름도 해야만 했다.

20대 4년 차 여성 소방공무원 A소방교가 생전 힘겹게 견뎌야만 했던 갑질 피해 실태다.

A소방교는 광주 광산소방서에 발령받은 2024년 7월1일부터 스스로 삶을 등진 지난해 10월3일까지 15개월간 총 24차례 술자리에 참석했다. 산술적으로 한 달 평균 1.6회.

회식은 단순한 저녁 식사로만 끝나지 않았다. 일부 회식은 이튿날 새벽 2시가 넘도록 호프집과 노래방에 심지어 나이트클럽까지 이어졌다.

회식 분위기는 막 새 근무지에 발령받은 A소방교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회식 자리에서는 남성 중심의 전근대적 군대식 위계 문화가 만연했다.

가해자 중 1명으로 꼽히는 부서장을 중심으로 A소방교에게 "서장과 과장 사이에 앉아라", "서장에게 인사 드리고 술을 받아라", "과장 옆자리에 앉아라" 등의 강요와 지시 같은 부탁이 이어졌다.

남성 상사 옆자리에 저연차 여성 소방관이 앉아서 모셔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요구였지만 조직 내 약자였던 A소방교는 쉽사리 거절하거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한 상급자는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라"라며 서슴없이 부적절한 호칭을 강요했다.

A소방교에게 회식 문화 자체도 고역이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은 이른바 '폭탄주'를 한꺼번에 들이켜는 원샷이 기본이었다.

상급자들은 늦게 온 사람에게 술 3잔을 연거푸 마시게 하는 '후래자 삼배', 참석자들이 술잔을 잇따라 마시는 '파도타기' 등도 강요했다.

가해 의혹 당사자인 직속 부서장은 A소방교에게 서장 퇴임식 행사 준비, 전임 서장 부친상·장인상 상차림 심부름도 시켰다. 상급자를 자가용으로 모시는 일도 예사였다.
 
가해 상급자들은 A소방교가 휴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갈 때에도 '윗사람'에게 선물할 술과 커피를 사오라고 시켰다.

생전 A소방교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게 생전 겪었던 조직 내 갑질 피해와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광산소방서와 광주소방본부는 직장 내 갑질 문화를 근절하지 못했고, A소방교를 보호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생을 등진 A소방교가 아닌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 A소방교가 생전 작성한 심리상담 자료에서 '남자친구와의 갈등' 부분만 악의적으로 발췌·왜곡하고 사망 면직 공문에 첨부했다.

면직 공문까지 내부 인사 시스템에 그대로 공개하면서 조직 내 헛소문이 돌았고 이 과정에서 비통함에 잠긴 유가족과 남자친구가 비난받는 일도 발생했다.

광산소방서, 광주소방본부는 유족이 애타게 여러 차례 요구한 감찰 요구를 5개월간 방치하며 묵살했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은 24일 '광주 소방관 사망사고 점검 결과' 보고서를 공개하며, 비위가 드러난 광산소방서 9명, 광주소방본부 6명, 소방청 2명 등 공직자 17명에게 엄중 문책을 요구했다.

특히 부실 대응과 사망면직 사유 왜곡 관련 책임이 있는 퇴직 공직자 2명에 대해서는 수사도 의뢰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A소방교 사망 사고가 소방 조직의 전근대적 내부 문화와 부실한 소방관 인권 보호 실태에 기인한 만큼, 소방청이 조직문화 개선과 소방관 인권 보호를 위한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도록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이번 점검 결과로 공직사회 갑질 문화 폐해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고,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피해자와 유족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뉴시스가 이달 10일 최초 보도하고 이튿날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주관 기자회견을 통해 A소방교의 생전 갑질 피해 사실이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공분을 샀다.

이재명 대통령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아직도 이런 구태 공직자들이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며 국무조정실에 공직기강 점검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도 "본인의 고통은 얼마나 심각했을 것이며, 남자친구와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속이 쓰렸겠냐"면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최악의 갑질인데 문제는 이게 그렇게 심각한 행위인 줄 모른다는 것"이라며 재발 방지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점검과 별개로 광주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도 관련 내사에 나선 상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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