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 성폭력 의혹' 장제원 "10년 지나 고소"…'피해자다움' 매몰 지적

기사등록 2025/03/09 07:00:00

최종수정 2025/03/09 08:19:57

피해자다움, 안희정 성폭행 때도 고개 들어

法 "바로 신고 못할 수 있다"…성인지 감수성 적시

학계 "비동의 강간죄 도입으로 여성·피해자 보호"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장제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12.18.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 추상철 기자 = 장제원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2023.12.1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오정우 기자 =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이 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피소됐다. 장 전 의원은 "무려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고소를 갑작스레 제기한 데는 특별한 음모와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든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성범죄'와 강간 범죄의 여성 피해자를 향한 '피해자다움' 통념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부산 한 대학의 부총장으로 있던 장 전 의원은 2015년 11월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자신의 비서 A씨와 술자리를 가진 뒤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장 전 의원은 A씨에게 '그렇게 가면 내 맘은 어떡해' 등 문자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고소하자 장 전 의원은 "무려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 고소를 갑작스레 제기한 데는 특별한 음모와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닌가 강한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는 지난 2022년 그를 고소하려 했으나 뒤늦게 용기를 낸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를 두고 일각에서는 성범죄나 강간 범죄 관련 피해자들을 향한 피해자다움 고정관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여성학에서 성범죄 관련 피해자다움이란 개념은 '피해자는 피해자다워야 한다'는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다. 가령 강간을 당할 경우 피해자를 향해 '즉시 신고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제지해야 한다' 등을 강요하는 게 피해자다움의 전형이다.

이는 특히 여성 성범죄 사건에서 "도망칠 수 있지 않았느냐"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피해자를 몰아세우거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면 피해자 책임도 있다" 등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낳곤 했다.

학계는 장 전 의원의 발언도 이러한 피해자다움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해당 발언은 피해자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다움에 매몰되는 형국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짚었다.

과거 법조계에도 '피해자다움' 논리 존재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수행비서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4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01.04.myjs@newsis.com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수행비서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4일 오전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권력형 성범죄에서 피해자다움이 고개를 든 건 이번만이 아니다.

2017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는 수행비서인 김지은씨를 강제추행하고 성폭행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안 전 지사 측은 "도저히 피해자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을 해왔다"며 성폭행이 아닌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했다.

1심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피해자가 곧바로 신고하지 않은 채 보여준 여러 반응과 행동을 보면 피해자의 진술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피해를 당한 바로 다음날 피고인의 아침 식사 메뉴를 물색한 점, 피고인과 동행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와인바에서 담소를 나눈 점, 피고인이 간음할 수도 있다는 정황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밤늦은 시간에도 피고인이 부르면 자발적으로 갔다는 점 등을 비춰볼 때 강제로 폭행을 당했다는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한 뒤 무죄를 내렸다.

그러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성폭력을 당했으면 바로 신고를 했어야지 왜 이제서야 제기하느냐" "성폭력을 당하고 함께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등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피해자를 추궁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다만 2심인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홍동기)는 기존의 피해자다움 논리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성격이나 구체적 상황에 따라 대처는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변호인의 주장은 정형화한 피해자라는 편협한 관점에 기반한 것"이라며 징역 3년6개월을 내리는 등 김씨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해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2018년 성희롱으로 해임된 대학교수가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을 적시하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대법원은 성범죄 사건에 대해 "피해자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 사실을 즉시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다른 피해자의 문제 제기나 신고 권유를 계기로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고 판시하는 등 피해자다움을 따지면 안 된다고 해석했다.

여성학계 "비동의 강간죄로 '피해자=저항' 인식 바꿀 것"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및 성범죄 처벌 강화 3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3.05.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및 성범죄 처벌 강화 3대 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03.05. [email protected]

한편, 3월8일 여성의날을 앞두고 지난 5일 국회에 '비동의 강간죄' 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피해자다움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나오는 분위기다.

비동의 강간죄는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가해자의 폭행·협박 대신 피해자의 '동의 여부'로 바꾸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상 저항이 곤란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을 경우에 강간 혐의가 인정되는데, 법안이 통과된다면 상대방의 동의가 없거나 의사에 반한 성관계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될 수 있다.

법 개정으로 성범죄를 당하는 피해자라면 적극적인 저항을 해야 한다는 기존이 프레임이 바뀔 수 있는 셈이다.

허 조사관은 "피해자가 온몸으로 저항하기 힘든 경우도 존재한다"며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한 외국에서는 저항하지 말 것을 교육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동의 강간죄가 적용되면 꼭 저항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꿔 여성들과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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