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림 전세사기…같은 임대인에 피해자 30명
월세보다 싸다고 유혹…꿈꾸던 전셋집이 '덫' 됐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피해자들의 좌절감
![[서울=뉴시스]](https://img1.newsis.com/2025/06/20/NISI20250620_0001872708_web.jpg?rnd=20250620151331)
[서울=뉴시스]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민생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서민의 삶에 고통을 주고 있다.
대출 규제 강화로 금융 소외계층의 자금난이 극심해지면서 불법 사금융 피해가 급증하고 서민의 주거안전을 위협하는 전세사기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파고든 보이스피싱은 최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욱 진화해 피해자들은 더욱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뉴시스는 서민다중피해범죄 피해 실태와 대안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글 싣는 순서 ▲불법사금융 덫(1부) ▲전세사기 늪(2부) ▲보이스피싱 지옥(3부) ▲마약 디스토피아(4부) ▲민생범죄 전문가 진단(5부)〈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이다솜 기자 = [서민 울리는 민생범죄] 전세사기 늪(2부)
"월세보다 이자가 더 싸다는 말에 허리띠 졸라매고 전세를 택했어요. 1억4500만원짜리 계약이 제 인생을 망가뜨릴 줄 그때는 몰랐죠. 전세사기는 단순한 금전 피해가 아니에요. 미래를 아예 잃는 겁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시촌 빌라에서 수험 생활을 준비하던 20대 여성 A씨는 2022년 봄 3년간 모은 돈과 외할머니의 도움으로 마련한 4500만원에 전세대출 1억원을 더해 2년짜리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일은 2022년 3월 4일, 계약 종료일은 2024년 3월 3일이었다. 그러나 2024년 5월 5일 계약이 해지된 지금까지 보증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있다.
계약 만료 일자가 다가오면서 보증금을 돌려 달라는 요청을 수 차례 했지만 임대인은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줄 수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임대인이 은행에 원금 및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면서 이내 해당 빌라는 경매가 개시됐다.
A씨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이미 수십 명의 임차권 설정이 얹혀 있었다. 집주인이 보증금 지급 의사 혹은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는 의미다. 그 때 A씨는 본인 앞에 선순위 임차인만 20명이 넘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도 사실상 보증금 반환을 받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임대인-부동산 동반 사기극…'깡통전세'에 당했다
피해자 22명이 모여 진행한 형사고소 과정에서 총 피해액은 17억5000만원에 달한다. 고소에 포함되지 않은 나머지 피해자들까지 더하면 피해액은 20억 원이 훌쩍 넘는다. 모두 단 한 명의 임대인에게서 비롯된 피해다.
임대인은 이 빌라를 2020년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로부터 매수하면서, 자신은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건물을 손에 넣었다. 51억원의 허위 신고가로 매매했지만, 당시 감정가는 30억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이미 선행 근저당 18억원이 설정돼 있었고, 이전 임차인들의 보증금 반환 채무까지 포함하면 해당 건물은 완전히 '깡통' 상태였다.
계약 당시 부동산에서는 "18억 근저당은 갚고도 30억이 넘게 남는다"며 A씨를 안심시켰다. 임대인은 보증금으로 기존 임차인의 돈을 돌려막는 방식으로 수십 건의 전세계약을 체결해왔고, 부동산 중개소와 짜고 건물 가액이나 안전성을 과장하거나 사실을 은폐했다.
A씨는 "임대인이나 중개인은 이 건물의 실질 가치보다 채무가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었을텐데 아무 설명 없이 전세 계약을 받았다는 게 가장 분하다"며 "지금 보니 계약서에 도장만 찍는 중개보조인들이었고 심지어 현재 해당 부동산은 폐업한 상태"라고 말했다.
전 재산 앗아간 전세사기…"꿈도 잃고 빚만 남아"
그는 "제가 단톡방 만들고 고소 주도한 것을 알고 있어서, 집주인이 문에 붙인 쪽지를 떼고 다닌다"며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일 무섭다"고 호소했다.
1억원의 전세대출은 고스란히 A씨의 빚으로 돌아왔다. 이제 꿈꾸는 것도 멈췄다. 당초 A씨의 꿈은 공간 임대 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보증금을 잃고, 소송 비용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쓰며 살아가고 있어 꿈을 접었다.
전세사기피해자센터를 통해 상담도 받았지만 실질적 해결은 요원했다. 형사고소를 통한 피해자 인정 없이는 어떤 지원도 불가능한 구조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다 해도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없다. 해당 빌라는 위반건축물로 분류돼 매입 지원에도 불리하다.
피해자 대부분 사회초년생…전세사기는 구조적 위험
A씨는 "건물이 위반건축물이라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됐고, 중개업소에서 '안전한 집'이라길래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이다. 집도 잃고, 돈도 잃고, 꿈도 접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전세사기는 단순히 개인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방치된 위험이다. 이 구조 속에서 수십 명이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법은 그들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데 까다로운 조건을 걸었으며 전세 사기 행위 자체를 막는 장치도 여전히 허술하다.
끝으로 A씨는 "누구든 전세를 고민하고 있다면, 전입세대 열람표와 등기부등본을 반드시 직접 봐야 한다"고 조언하면서도 "다만 전세 사기 피해를 입더라도 국가가 보호해 줄 것이라고는 믿지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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