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한국 방문…"가장 작은차 준비해달라"
이동 중 아이들 안아주고 기도…소탈한 행보 주목
세월호 생존 학생·희생자 유가족 찾아 위로·세례
2018년께 극비리 방북 추진…'하노이 노딜'로 무산
![[서울=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선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88세. AP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전 7시35분께 자택에서 선종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해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25.04.21. photo@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5/04/21/NISI20250421_0020780644_web.jpg?rnd=20250421173655)
[서울=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 선종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88세. AP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오전 7시35분께 자택에서 선종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퇴원해 활동을 재개하고 있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8월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 영접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뉴시스DB) 2025.04.2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88)은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한국을 방문한 두 번째 교황이다. 2013년 교황으로 선출된 후 브라질, 이스라엘에 이어 세 번째 방문지 한국을 택하고 방북을 추진하는 등 한국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에 대한 시복식'과 대전교구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대회 참석차 이뤄졌다. 교황이 대륙 단위 청년대회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우리 측에 전달, 기아차 '쏘울'을 타고 이동했다. 이동 중에도 길에 어린이가 보이면 차를 세워 안아주는 모습이 화면에 담기면서 큰 관심을 받았다.
방한 당시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과 희생자 유가족들을 찾아 위로했다.
교황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됐다"며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부 유가족에게는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의 평화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2018~2019년 무렵 방북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끝내 북한 땅을 밟지는 못했다.
교황의 방북 추진과정은 최근 이백만 전 주교황청한국대사가 펴낸 신간 '나는 갈 것이다, 소노 디스포니빌레'(메디치미디어)를 통해 자세히 전해진다.
책에 따르면 2018년 교황청은 당시 이백만 주교황청 한국 대사에게 북한과의 직통 창구를 주선해 줄 것을 은밀히 요청했다. 수개월 뒤 북한이 교황청 종교행사에 고위외교관을 보내왔고 소통이 시작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교자로서 '가톨릭 황무지'인 북한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에 종교의 자유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당시 교황청 내부에선 방북 반대론이 상당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황이기 이전에 선교사다.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다가 아니라 사제가 없기 때문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서울=뉴시스】유상우 차장 = 프란치스코(78) 교황은 친근하고 편안한 할아버지였다. ‘환한 미소와 낮은 몸짓’은 몸에 밴 듯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권위적인 말투와 행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방한 첫 날부터 소박하고 낮은 자세로 대중과 눈을 맞추고 자신의 생각을 조용하면서도 분명하게 전달했다. 소외되거나 상처받은 보통사람들을 찾아다닌 게 한국에서의 그의 4박5일, 100시간이었다. 한국 땅을 밟음과 동시에 그가 만난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새터민, 이주노동자, 시복대상자 후손, 평신도 등이었다. 장애인과 위안부 할머니, 강정마을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 밀양주민, 용산참사 유족도 챙겼다. 방한 기간 그가 보여준 모습은 알려진 그대로 소탈하고 인간미로 넘쳤다. 사회 지도층이 즐기는 ‘특권의식’ 따위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말이 아닌 행동 만으로도 그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세월호 참사로 아파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장애아동의 볼을 비비며 사랑을 나눴다. “교황의 행동 자체 만으로도 감동이었다”고 말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각 행사장에서도 그는 ‘성직자란 이런 것’을 웅변했다. 주최 측이 준비한 큰 의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의 눈에는 임시로 놓인 조그마한 보조 의자만 들어왔다. 장애어린이들을 만날 때는 의자에 앉으라는 주최 측의 권유를 고사했다. 손자들의 재롱을 보듯 흐뭇한 모습으로 장애아들의 공연을 지켜보는 데 집중했다. 아시아청년대회 폐막식에서는 계단을 걸어 내려와 교황방한위원장인 강우일(69) 주교를 포옹하기도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고령에다 무릎까지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는 스스로를 낮췄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 앞에서, 소방공무원 영결식에서 기념사진 찍느라 바쁜 한국 사회 지도층의 모습이 스친다. 100시간 동안 그가 보여준 행동은 한 표를 부탁하며 시민들의 손을 잡고 머리를 조아리는 어색한 ‘단발성 쇼’는 분명 아니었다. 자신을 낮추는 데 너무나 익숙해진, 그래서 습관이 돼 버린 듯했다. “평화란 상호 비방과 무익한 비판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주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믿음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배려해야 합니다”, “청빈 서원을 하지만 부자로 살아가는 봉헌된 사람들의 위선이 신자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교회를 해칩니다.” 직설적이지 않지만, 그의 강론이나 연설문 행간에 담긴 메시지를 몸과 마음에 또렷하게 새겨둘 필요가 있다. 특히 뒤틀린 한국사회의 현실을 정확히 꿰뚫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혹자는 그의 메시지가 지극히 평범하거나 새롭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켜야 할 양심과 도덕,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세상의 가치로 보면 일과 권력 등이 중요하지만 지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그리고 남을 위해 기도하세요.” 문화부 [email protected]
프란치스코 교황은 실무진에게 협상 시 기존의 전통과 원칙, 전례에 얽매이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해당 협상에 한국 정부와 한국 교회는 나서지 말게 하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물밑에서 조용히 지원하도록 했다. 염수경경 추기경(평양교구장 서리, 서울대교구장)의 평양 영접도 필요 없다고 했다.
교황 방북의 핵심 목적은 '선교의 자유 확보'였다. 바티칸은 북한에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의 종교 개방을 요구했고, 당시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합의점에 접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청은 북한 측에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라는 말은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교사에 걸맞는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가톨릭 공동체의 법적 지위 확보 ▲교황청이 인정한 신부의 미사 집전 허용 ▲가톨릭 신자의 자유로운 미사 참례 ▲모든 종교범 석방 ▲종교단체의 인도적 지원 허용 등 5개의 요구 조건도 제시해 선교 자유의 명분을 확보하려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교황 방북 프로젝트는 한순간에 좌초됐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는 '노 딜'(No Deal)'로 끝나면서 교황 방북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2027년 서울대교구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두번째 방한도 계획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해당 협상에 한국 정부와 한국 교회는 나서지 말게 하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물밑에서 조용히 지원하도록 했다. 염수경경 추기경(평양교구장 서리, 서울대교구장)의 평양 영접도 필요 없다고 했다.
교황 방북의 핵심 목적은 '선교의 자유 확보'였다. 바티칸은 북한에 베트남이나 중국 수준의 종교 개방을 요구했고, 당시 협상 과정에서 양측은 합의점에 접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청은 북한 측에 '선교의 자유'를 허용하라는 말은 명시적으로 하지 않았으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교사에 걸맞는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울러▲가톨릭 공동체의 법적 지위 확보 ▲교황청이 인정한 신부의 미사 집전 허용 ▲가톨릭 신자의 자유로운 미사 참례 ▲모든 종교범 석방 ▲종교단체의 인도적 지원 허용 등 5개의 요구 조건도 제시해 선교 자유의 명분을 확보하려 했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던 교황 방북 프로젝트는 한순간에 좌초됐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는 '노 딜'(No Deal)'로 끝나면서 교황 방북 프로젝트는 물거품이 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2027년 서울대교구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두번째 방한도 계획했으나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