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로 쪼개지는 조직…"분산될수록 기능 약화"
강력한 독립기구 필요성
시범판 '조가조작 합동대응단' 성패 주목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이재명 정부의 조직개편안으로 금융 감독 체계가 변곡점을 맞았다. 9000여개 조문을 손질해야 하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시작되지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기능이 네 갈래로 흩어진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세부안은 정해지지 않았다.
쪼개든 합치든 금융·자본시장 감독 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국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 체제 일원화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국거래소의 시장 감시 기능 분리 방안에 공감을 표하면서 그간 논의 수준에 머물던 '한국판 SEC' 구상이 현실화될 기회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정부 개편안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정책 기능을 담당하는 재정경제부와 감독 기능을 맡는 금융감독위원회로 분리된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소비자 보호 기능을 떼어내고 둘로 쪼개진다.
이번 개편에 따라 은행·보험·금융투자 등 업권별 정책과 감독, 자본시장 감시, 회계 등 기능별 재편 논의가 뒤따르게 된다. 수반되는 조문 개정만 9000건에 달할 예정이다.
문제는 조직이 쪼개지고 합쳐지는 과정에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기능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과 제도를 담당하는 금융위 자본시장조사총괄과는 재경부로, 실제 조사 인력을 갖춘 자본시장조사과는 금감위에 남으며 분리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은 소비자보호원으로 대규모 인력이 빠져 나가면서 조사국 규모가 일시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한국판 SEC, 왜 필요한가
실제 한국은 기관별로 기능이 분산돼있다. 한국거래소가 의심 거래를 포착해 사건을 이첩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이후 금감원·금융위 조사와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 증권선물위원회 의결을 거쳐 최종 제재가 이뤄진다. 증선위의 검찰 통보·조치 이후에야 검찰 수사가 시작돼 재판까지 끝나면 3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혐의자 도주나 증거 유출 등 부작용이 반복돼왔다. 이에 조사·제재 권한을 통합한 강력한 독립기구, 즉 한국판 SEC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 SEC는 감시·조사·제재 권한을 모두 가진 독립적 증시 감독 기구다. 형사 처벌 중심인 국내와 달리 미국은 SEC가 다양한 행정 수단을 동원해 행위 의심자의 계좌를 지급 정지시키거나 강력한 과징금을 부과한다. 형사 중심의 국내 체계와 달리 실효성이 높은 이유다.
한국도 미국 SEC를 벤치마크해 행정 제재 수단을 확대해왔다. 과징금 상향, 금융투자상품 거래 제한, 상장사 임원 제한 등 조치를 도입해 형사 절차에만 의존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다만 분산된 체계로 현실적 한계가 있다. 예컨데 불공정거래 의심 계좌를 지급정지하려면 충분히 증거를 갖춘 뒤 금융위 의결까지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시점이면 이미 조사가 상당 부분 진행돼 있어, 부당이득의 초기 은닉을 방지하려는 취지가 무색해지게 된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도는 도입됐지만 금융위 의결까지 있어야 지급정지가 가능하다. 사실상 조사 초기 단계가 아닌 혐의가 거의 확정된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지급정지를 시키느니 빨리 사건을 처리해버리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대통령도 힘 실었다…시장감시 독립 필요성 공감
조직개편과 맞물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도 독립적 시장 감시 기구 출현에 힘을 싣는다. 취임 초기부터 한국거래소에 방문해 시장 감시 기능 강화를 주문한 데 이어, 최근 그는 한국거래소에서 시장감시 기능을 떼어내 분리하는 방안에 대해 "일리 있어 보인다"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열린 바이오혁신대회에서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가 건의한 시장 감시 독립 기구 설치안에 대해 "(한국거래소의) 감시 기능과 시장 조성 기능이 분리돼야 한다는 말은 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며 "검토해 봐야 할 좋은 지적같다"고 말했다.
이승주 대표는 이날 "한국은 단 하나의 운영 주체가 상장 심사부터 시장 감시까지 모두 같이 하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며 "시장 감시 기능을 따로 분리해 철저하게 시장을 감시하는 독립 기구를 만들고 복수의 시장을 만들어 해외 자본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미 한국판 SEC의 '시범판' 격으로 운영되고 있는 주가조작 합동대응단도 향후 출범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금융위·금감원·거래소 합동대응단은 분산된 불공정거래 대응 업무의 중복을 줄이고 이상거래 탐지와 조사 연계를 강화하려는 취지로 지난 7월 출범됐다.
다만 합동대응단은 일부 중대 사건의 초기 대응 강화에 목적이 한정돼있으며, 제재 권한도 없다. 향후 상설 조직화 여부와 제재 권한 부여가 한국판 SEC 논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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