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발아" "못난놈" 걸작과 함께한 이순재의 70년

기사등록 2025/11/25 09:07:56

배우 이순재 25일 오전 별세 향년 91

70년 연기 인생…숱한 걸작 남겨 기억

주말극 '사랑이 뭐길래' 폭발적 인기

"대발아" 그 해 최고 유행어 되기도 해

'허준' 유의태 역…역대 최고 사극으로

'거침없이 하이킥' '꽃보다 할배' 큰사랑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약 70년 간 연기한 배우 이순재(91)는 그저 오래한 연기자가 아니라 한국 드라마사(史)에 오래 기억될 걸작을 여럿 남긴 배우이기도 했다.

1991년 방송한 MBC TV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이순재의 연기 인생을 얘기할 때 아마도 가장 먼저 언급될 작품일 것이다. 김수현 작가가 쓴 이 작품은 65%에 육박하는 시청률이 보여주듯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 뿐만 아니라 가족극이라는 장르를 국내 주말 드라마계에 정착시킨 작품이었다.

일명 '대발이 아버지' 이병호를 연기한 이순재는 그 시대 전형적인 아버지를 연기하면서 동시에 시대 흐름에 따라 어색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 고른 지지를 받았다. 꼬장꼬장한 가부장인 이병호가 사랑을 받았던 건 이병호라는 인물을 근엄하게 연기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정을 담아낸 이순재의 연기 덕분이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이순재는 흔히 얘기하는 '국민 아버지'가 됐다. 그가 아들 이대발(최민수)를 부를 때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로 "대발아"라고 부르는 대사는 전국민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이순재는 '사랑이 뭐길래' 이후 나온 또 한 편의 김수현식(式) 가족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5)애서 다시 한 번 아버지 역을 맡아 주말극 인기 스타가 되기도 했다.

1999년에 나온 MBC TV 월화드라마 '허준' 역시 이순재의 연기를 말할 때 반드시 얘기해야 한다. '허준'은 당시 최고 시청률 64.8%를 기록, 현재까지 사극 최고 시청률 기록을 지키고 있다. '허준' 역시 '사랑이 뭐길래'처럼 단순히 시청률만 높은 작품이 아니라 높은 완성도로 아직까지 최고 사극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이순재는 허준(전광렬)의 스승 유의태를 맡아 극 초·중반부엔 사실상 주인공에 가까운 비중으로 극을 이끌었다.

이순재는 유의태를 통해 의원의 길에 관한 숱한 명대사를 남기며 사랑 받았다. 특히 허준에게 유언으로 자기 몸을 해부해 의술을 더 발전시켜 달라고 당부하는 장면은 최고 명장면으로 꼽힌다. 방송하는 시간엔 택시도 다니지 않을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누렸던 작품이었기 때문에 유의태 대사들도 여럿 유행어가 됐다. 그 중 유의태가 아들 유도지(김병세)를 향해 "못난놈"이라고 일갈하는 대사는 이후 수 년 간 남녀노소 불문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2006년 방송을 시작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은 이순재가 유독 자랑스러워 하는 작품 중 하나였다. 당시 70대였던 이순재는 이 작품으로 자신이 긴 세월 쌓아온 엄숙한 이미지를 단번에 뒤집으며 충격을 줬다. 이 작품에서 이순재가 연기한 이순재는 한방병원 원장이지만 같은 한의사인 며느리에게 실력과 명성 모든 면에서 밀려난 시아버지, 고집불통에 아내를 구박하는 게 일상인 밉상 남편, 야동을 보다가 가족에게 발각되는 철없는 남자 캐릭터였다.

시트콤 달인으로 불리는 김병욱 PD가 연출한 이 작품은 일일 시트콤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10% 후반대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가장 완성도 높은 시트콤 중 하나로 꼽힌다. 이순재는 이 작품을 수 차례 "걸작"이라고 말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이순재는 이 작품을 통해 노배우로서는 다소 민망할 수 있는 '야동 순재'라는 별명을 얻게 됐는데도 오히려 "연기에 대한 칭찬 아니겠느냐"며 오히려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아니지만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시리즈 역시 이순재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는 늘 공부하는 태도, 자신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로 귀감이 됐다. 여행을 하면서도 유독 호기심이 많고 더 배우고 싶어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 지지를 받았다. 이와 함께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케이블채널 예능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후 여행 예능의 원조 같은 작품이 됐다.

그는 '꽃보다 할배3'(2015)에서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나 받으려고 주저앉아 버리면 늙어버리는 거다. 난 아직도 한다 하면 되는 거다"고 했다. 또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언제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건 잊어버리고 닥치면 닥치는 대로, 당장 나는 내 할 일이 있으니까. 그거 하다 보면 이제 끝내야 될 때가 올 거 아니냐 이거다. 그럼 그때 끝내면 되는 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순재는 25일 오전 세상을 떠났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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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발아" "못난놈" 걸작과 함께한 이순재의 70년

기사등록 2025/11/25 09:07:56 최초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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